작가들의 글/전혜린

죽음에 관하여 (배경음악/Abdullah Ibrahim - Eleventh Hour)

고독한낙서 2009. 1. 14. 01:17

토무라 조[藤村操]의 ≪번민기(煩悶記)≫에 부쳐

집착 ― 어는 사항이나 인간이나 생명에 밀착해 있는 상태는 객관적인 눈으로 볼 때 때로는 취한 느낌, 숨막히는 압박감을 우리에게 준다.
영원히 안 팔릴 열쇠의 꾸러미를 방탄 조끼처럼 걸치고 팔러 다니는 노인, 내일이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을 것이 확실한 회색 생활을 지속하고 잇는 수많은 생활인들. 내일 지구가 파괴된다는 것을 통고 받는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 다만 아연히 입을 열고 앙천 탄식(仰天嘆息) 할 뿐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 ― 우리의 대분분이 그 중에 들어가는 ― 에게는 죽음이란 다만 우연한 불상사 이외의 다른 의의를 갖고 있지 않다. 일회적인 생을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신비한 끝인 죽음이 이렇게 등한시되엇 될 일인가는 한번 고려해 볼 문제가 아닐까?
죽음에 무관심하기 위해(내심 우리의 의식은 누구나 그로부터 놓여 있지 않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기를 기만하고 의제나 거기에 다른 무엇이 섞인 혼합물, 때로는 대체물만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의 고독은 그러니까 '영혼의 전달'일 불가능한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지속이 불가능한 데 기인하는 불안과 회의에서 싹트는 것이다.
전달(또는 사랑)이 순간에만 가능한 것이고 우리는 '실존'과 만찬가지로 매순간마다 선택되고 의식적으로 받아들여져야먄 한다는 것 그리고 이 받아들임, 선택함에 있어서의 결단성이 우리를 결정하는 전부라는 것을 안다면 사랑이나 기타의 대인관계가 얼마나 투명하고 맑은 관계로 될 것인가?
우정이나 사랑은 그것의 본질에 있어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방향으로 나의 의식을 나날이 선택하는 나의 태도, 즉 나의 의식의 의도에 의해서만 그러한 것들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란 결정으로 승화된 순간을 말하는 것이며 가득찬 순간, 자기 의식과 타의 의식이 완전히 하나가 된 순간을 말할 것이다.
순간은 포착되어 응결시키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 '순간'들이 생의 가치의 전부인 것을 생각할 때, 그리고 그것이 없다면 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생각 할 때 어떤 허망하고도 엄숙한 감동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