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낙서도 감정노동이다 74

연애

모든 이의 삶에 밀첩한 관계가 있는 문제, 다시 말해 사람의 공동 과제를 논하기란 매우 어려운바, 오히려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글 쓴 이에 비해 월등히 생각이 깊고 원숙하여 참으로 안 썼느니만 못한 무용지물이 되는 수가 흔히 있겠다 하겠습니다. 남자의 연애, 여자의 연애란 제목을 부치고 보니 이 역시 누구나의 절실한 사념이요, 보편의 과제임을 절감하고 남음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우리들의 연애가 현제 부딪치고 있거나 앞으로 결게 될 이 과제 앞에서 잠시 생각을 모으는 한 충실한 벗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정신의 진수가 사랑인 것과 불교의 헥심이 또한 대자대비임은 너무도 잘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애란 이와 같이 인간 지선이 감정인 사랑이 성을 달리하는 이성을 두고 솟아남을 일러 ..

건드려 본다.

부르조아틱하게 원두 커피를 갈아 진하게 한 잔 내려 내 건조하고 칙칙힌 혀를 자극 시켜 본다. 달콤한 타액 보다는 못하나, 씁씁한 담배 니코틴 보다는 자극적이다 오래간만에 앉아 이렇게 글 걸음마를 시켜 본다. 하나,둘.셋,셋,다서엇 문득 이런 말이 생각난다. "독은 아름답고 죄는 달갑다" 는 말이 있다. 겨울도 꽤 깊어지면 확실히 무언가가 움츠려든다. 학교 난로 옆이나 온돌방 아랫목 자리잡고 앉으면 일체의 거동이 싫어진다. 얼굴이 불그레 익도록 몸이 더워지고 연방 눈 감기는 조름끼기 눈섭 끝을 간지르면 실상 예서 더할 수 없으리만치의 달디 단 안식에 잠겨든다. 서성이던 마음도 가라 앉고 어지간한 근심 쯤 꽤 잊고 살것 같다. 애환에서 달려 긴 불면으로 지새던 일쯤은 어리디 어린 날의 아슬한 기억과도 같아..

네번째 줄에서 떨어진 광대의 노래6

이 집에는 귀가 어두운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셨고 집은 그야 말로 바람이 조금만 불면 쓰러질듯 외줄을 타는 곡예사의 긴장감을 엿볼 수 있는 집이였다. 그 할머니를 저 중간쯤으로 꾜셔와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당신이 찍히는걸 무척이나 싫어 하셨다. 이유가 있을까 누군가 나 이외의 사람이 와서 사진을 찍으며 그 할머니에게 불쾌한 짓을 한걸까 혹은 애초부터 사진 찍히는것에 거부감을 같고 계신 분이셨을까.(아직도 그게 의문이다) 결국 할머니를 내가 원하는 장소로 모셔 오지도 못했거니와 그 분의 모습을 담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집안 곳곳을 찍는건 허락해 주셨다. 앞으로 오래 오래 저 집과 함께 저 모습으로 게셔 줬으면 하는 소망을 뒤로 하고 할머니에게 큰 소리로 "감사 합니다" 인사를 하니 손을 흔들어 주셨다..

세번째 줄에서 떨어진 광대의 노래5

나는 누구란 말인가. 진시로 내 삶에서 나는 누구란 말인가. 나는 당신의 누구인가? 겨우내 내 시력이 건강했었나를 돌이켜 생각한다. 잃은 사람이나 새로 얻은 사람이 있었는가? 닫혀진 문 앞에서 나직이 내가 노크 했었나? 그랬는데 열리지 않았었나? 내 감정은 매우 가라 앉았다. 자구 밑바닥으로 처져 내려 생사의 결단 보다도 더 가파롭게 쳐져 내려 정녕 바닥에까지 침잠한 것이다. 한 덩이의 석탄이다. 하나 속속들이 기름이 부글 거리고, 불을 댕겨 붙이면 삽시에 펄럭이는 화염이 또 된다. 왜 괴로와야 하나? 무엇을? 그 흔하고 오랜 습성, 명제도 불투명한 번민은 자못 이성의 오욕이라 하겠는걸. 하면 그동안 무엇을 번민했었나를 말해보라. 말해보라. 그리고 또한 사랑 했었나? 아슴한 옛날, 이름도 저승인 그 전세..

원소리

사람들은 뭘 하고 있나?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서 모든 이가 목소리를 합쳐 소리 지른다. 바르고 자유롭게 살자고 한다. 윤택하고 따습게 살자고들 한다. 그야 인권의 발언이지. 겨우내 자기 땅의 역사를 묵상 하던 지금 신선한 늦봄 천지를 맞았다.봄의 상명한 기운이 꽃의 담향과 섞여 솜실 같이 풀어진다. 우유라거나 또는 비누거품, 공기가 부드러워 못 견디겠다. 그렇구나. 쓸쓸한 자연 곁에 내가 엎뎌 있었다. 아무리 퍼내도 삽시에 또 괴는 샘물, 무량한 상념을 소의 위장처럼 느리게 반추 하고 있었지. 자연은 언제나 놀라움의 장이다. 괭장히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는 놀래 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놀라움에 적쟎이 굶주려 왔구나.

휴식,그리고 신망.

오랜만에 글을 써 보자고 자리에 앉아 본다. 저 셔츠는 여름이면 어김 없어 나의 추하고 더러운 몸뚱아리를 가려 주는 가리개다. 옷걸이에 걸려 한줄기 빛을 받고 있는 셔츠에 내 눈길이 머문다. 무엇때문일까. 무엇이건 쉽사리 얻는 듯이 보이던 사람도 어느 땐 냉엄한 거부 앞에 춥게 세워진 나 자신을 본 걸까? 처음엔 이럴 수거 없다고 여기며 주먹으로 문을 두드린다. 가슴으로 떠밀어 보고 다시 머리를 부딪는다. 실오라기 보다도 가늘고 긴 유혈. 이건 열리지 않는 문이다. 비로소 그 실감이 전신에 퍼져돈다. 불시에 입은 총상처럼 어이 없다. 날이 저문다 빌어먹을 이곳으로 이사를 온 후부터는 연지빛 놀이, 분결 같은 하늘에 선훙을 함빡 물들인 하늘은 볼 길이 없다 내가 볼 수 있는 하늘 이라곤 희쁘연 먼지와 매연..

선택, 그 끝없는 딜레마

요 몇일 내가 느끼고,듣고,바라본것은 바람과, 감나무 나뭇가지에 걸려 바람에 반항 하는 비닐조각의 소리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무수히 지나가는 자동차소리와, 삐그덕 거리며 흔들리는 페가 방안의 그들에 딜레마를 본것이 전부이다. 우숩게도 그 페가 앞마당엔 곱게 심어 놓은 마늘이 주인이 떠난지도 모른채 열심히 숨쉬고 있었다는거다. 오랜만에 내 여린 감상의 창문이 열린걸까. 바위를 가르고 솟는 한 줄기 단 샘처럼 세월의 이끼를 털어내고 모가지를 뽑아 올리는 젊은 초록들이 있다. 그 전날 슬픔의 음미마저 달갑고 화사하던 젊은 시절의 땀과 하늘과 그 기후가 돌아왔단 말인가. 나른한 두 팔을 길게 펴고 그 위에 땀에 젖은 얼굴을 얹어 잠시 꽃그늘에 쉬어 가고 싶은 이 늙은 사내, 어져면 저 방안의 모습은 내..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광대의 이야기5

아직 추위가 남아 글을 쓰려면 이 사내의 허리와 손이 시렵다. 언젠가 이런 글을 긁적 인적이 있다. 사랑만으로는 결코 배부르게 못해줄 지금 세상의 여자들, 그럼에도 신이 한가지만을 허락해 주신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한 여자를 갖겠다. 지헤로운 한 여자를 물은 물에 합치고 불은 불과 섞이면 더 타오른다지. 생명이 은성해 지는 징후, 더 자라고 더 너그러워지고 더 밝아 진다면 주위의 모든 사람, 모든 사물, 여러 일거리, 전부의 자연물까지도 한결 뜨겁게 껴 안을 수 있고 갑절의 충실로서 베풀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어느날 한 사내가 두 팔을 벌리고 겨울 바람에 두 팔을 벌리고 바람이 더 많은 산으로 가는걸 보았다. 마치도 그 몸 시늉은 바람을 안아주려 가는것 같았었다. 그래 산에 바람이 많지. ..

습관처럼 비현실의 도취를 만들어 꿈꾸기를 좋아 하는 나.

죄송했습니다. 많이 굶주렸기에 그 허기에서 광란에 붙잡혔습니다. 오늘은 괜찮습니다. 바다에까지 나갔다 왔는걸요. 헌데 고요 하고, 속으로 찾아든 외롬은 아무 소리도 울려 내지 않고 울려내보내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그 놈의 독백. 푸른 소주병 하나에 위안을 받으며 소줏잔과 이내 히히덕 거리며 어느새 독백은 주정으로 전락한다. 한 때는 처자식을 먹여 살리던 저 배가 지금은 한낯 쓰레기로 전락 하듯 말이다. 까닭없이 눈을 적신다. 감상과잉일까? 아님 미숙아라고 맥없이 자처해 버릴까? 자학에 대하여도 생각해 본다. 이 일이 자학인가 아닌가를 스스로 물어 본다. 이내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삭풍속에, 머릿속은 불붙고 가슴은 얼어든다. 그놈 속의 반은 가울이고 반은 늘 봄이다 밤낮으로 낙엽이 지며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