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낙서도 감정노동이다

사랑이라는 소리 없는 노크

고독한낙서 2022. 9. 20. 06:06

사랑이란 언뜻 눈부신 말이 되기 쉬우나 때때로 참 허전하고 고단한 영광의 그 이름인 것이다. 요즘 들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랑을 가르치는  종교를 우리는 쉽사리 들 수 있고  사랑에 대해  쓰고 있는 책도  여러권 읽을 어렵잖이 기억해 낼 수가 있지만, 실상 사랑을 얻는 지혜는 멀고 희귀하여 짐짓  손 닿지 못하는 성주의  광망이나 다름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썩 드물게, 사랑이라는 지혜에 눈 뜬다고  그 다음 곧 바로 사랑이 받는 구원이나 사랑을 이룩하는 결실에로 나아가는 것이 아님에 또한 사랑의 난제는 있다 하겠다. 

에로부터 오해되기 쉬웠던  것에 사랑이 있었고, 사람이 상처 받길 잘 하는 것에도 사랑이 있어 왔음을 우리는 익히 안다고 할 것이다. 

사람이 사랑의 말과 그 맹세를 남용하는 곳에 항시 복병과도 같이 사랑의 상처가 기다리도 있었음을 우리는 살로 잘 기억 하고 있다.

마치도 가시를 갖고 있는 장미처럼 사랑은 희열과 고뇌를 한 뿌리 위에 키우고 있으며, 다시 이 위에 믿음과 의혹을 번갈아 불러 들임으로 해서 우리의  정신이 다못 수습키 어렵도록 산란하고 지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되돌아 나올 수 없는 미궁의 무수한 사잇길처럼 들어서는 곳마다 불신과 의혹으로 넘어지기 쉽게 하는 사랑의 도정을 우리는 피고하고 어수선한 머리와 가슴으로 더듬어 가는 수가 정녕 많지 않던가. 

사랑의 상흔이 어쪄면 사랑의 유열보다 더 번성하기 쉬운  바 한 가닥 성정임도 이미 낯설지 않은 삶의 상식이 되어 있다고 보겠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전혀 힘들이지 않는 등사 같이 손쉽게 사랑을 행하고 사랑을 배푸는 사람도 간혹있긴 있는가 보다. 
에컨대 번갯불 모냥 빠르게 한 지고한 명령이 이마를 쳐서 생면부지의 어린이를 구해내고 자기는 달리는 차 바퀴에 깔려 숨지고 만 살신의 인간애가 얼마전에 항간의 이목 앞에 거룩하히 떠로르기도 했었거니와 이와 유사한 미거는 이 밖에도 간혹 있어 오고 있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버이의 정이 그 모두 고귀한 도여와 나타나내지 않는 희생을 전제삼아 피어나고 있지마는, 언젠가 달리던 버스 안이 가솔린의 인화로 삽시간에 커다란 불덩이로 타올랐을 때 맨주먹으로 유리를  쳐 부수창 밖으로 어린 딸을 내어던져 간신히 그 아이 하나가 살아 남게 되었던 일을 생각하면, 상기도(기도에서 기관지, 후두, 인두, 코 안이 있는 부위) 집채만 한 불덤불 속으에소 그 불길보다 더 뜨겁게 작열했던 부성애의 한 피 어린 목소리를 듣는 듯 하다. 
또한 배운 것도 없는 두메의 한 어린 소녀가 불란 하고도 고귀한 참 사랑을 바치되 여기 조금도 이론적 긍지나 자의식의 오만 없이 불쑥 정복한 자연의 발아처럼이나 유순하고 손쉽게 이 일을 해버리는, 말하자만 퍽은 멋진 고자원적의 연애를 보기도 했다. 
가령에 종교사에 빚나는 저들 치명의 성인을 들 수 있는 바이며, 신앙에 순하는 순교나 나라 위해 생명을 더니는 순국 같은 것이 모두 아순하고도 열 띤 사랑을 단지 공공의 가잉물 같이 도고 감상만 할 수는 없다. 
사랑은 모든 사람의 인생을 골고루 잦아 주는아주 공평한 노크이기 바라는 것에 우리는 뜨겁고 한결같은 간망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차라리 그 간망은 부정하며 더 훨씬 집요한 것과 같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이를테면 사람이 병중에 있을 때 먼저 바람직한 것은 치유이지만 기실 이 떄에도 보다 더 목마른 건 사랑으로 건강을 빌어 주는 몇 사람의 띠스한 마음씨라 하겠다.
또한 사람이 재난에 처했을 때 제일로 먼저 곤경의 타개에 다급할 듯 싶어도 사실은 더욱 아쉽고 공연히 마음 쓰게 되는 것이 바로 사랑으로 그 재난을 함께 참아 받는 사랑의 가족이나 동지가 저를 옆자리에 있고 없고 하는 거기에 관여하는 그 심정일듯 싶다. 
정신의 공허와 감정 속의 상막함을 서로 돌보아 위안을 건네 주는 상시의 온정 이것은 바로 사람의 삶을 괴어 주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며 속 깊리 굽이치는 바다 밑의 물여을 같이 한바다 큰 물을 이 위에 얹어 흐르게 하는 귀중한 인간성의 저류라고 볼만 하다.
정녕코 사랑이 깃들어 있는 유감한 위안이 없고서는 사람의 삶의 도무지 황량함을 참을 길 없다. 또한 사랑은 때때로 이적의 수식을 낳으며 불합리를 바꿔 놓는 진귀한 성취를 부르기도 한다. 
마치도 신령한 풀과 같이 이것은 흩어져 있던 정신들 마저 이해와 화목에로 결속을 시켜준다.
때문에 사랑이 담긴 가정에 비해 사랑을 찾아 볼 수 없는 황랭한 가정은 불이 꺼진 창문처럼 쓸쓸하고,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에 겨누어 사랑을 외면한 어느 사람들은 눈동자가 없는 얼굴 같은 공허로써 우리를 당혹게 한다 
진정 모든 행위의 그 나타나지 않는 마음 속에 사랑이 신선한 혈구마냥 순환하고 있기를 바란다고 누가 말한다 해서 여기 아무것도 잘못을 찾어낼 수도 없을 것이다 
사실에 있어 사랑은 들어 있는 이상엔 증오나 횡포까지 거기 한 가닥의 기이한 이름다움을 가지고 있던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으며, 또한 사랑이 남아 있는 경우일진데 이반이나 불망도 오히려 은은한 조명을 입어 고즈넉한 향연이 서려 있는 제탁과도 같이  삶의 예절을 저심하게 하던 일을 아울러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삶은 길고 긴 항해에 겨누어 볼 수 있다
격량에 떠밀리기도 하고 달빛 어린 물결을 타고 백조인 양 떠 가는 날도 있을 것이다. 뱃머리의 등불이 되는 건 여시나 사람 마음의 사랑이요 사랑이 불 밝혀 맷머리를 비추는 동안은 물길을 가는 온갖 피로를 모두 갈래어 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랑은 한갖 예찬거리로 심미할 물건이 아닌 것이 너무나 명백하며, 오직 이를 지향하는 전렴의 욕구와 만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열심한 재배로 키워 가꾸어야만 하고 대리석으로 만드는 조소 작품처럼 이것도 무한정 애쓰고 땀 흘려여만 얻을 수 있는 듯이 여겨진다
아무튼 사랑은 행복의 없지 못할 열쇠이다. 다시 말해 사랑을 행하는 이는 그 사랑으로 해서 행복을 만든다. 
어떤이는 인내를 통해 사랑을 이루었고 또 다른 이는 희생을 무릅써 사랑을 가꾸었으며 누구는 총명한 이지로 사랑의 기틀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얻고자하는 이든 갈망에도 사랑이 따르면 이를 얻지 못한다.  그 전에 어떤 노부부는 아들을 찾아 월남을 했는데, 때마침 6.25동란의 험악한 소용돌이 속에 함북 회령인가 하는 곳에서부터 육로천 여리를 도부로 찾아 오기에 자그만치 한 달 간을 밤에도 노숙을 하다시피 날만 새면 줄곧 남쪽으로 가는 길만 재촉해 걸었다는데 노인들이라 산줄기를 타고 넘는 일이 힘에 부쳐 할 수 없이 기차가 지나 다니는 컴컴한 터널을 몆번이나 거쳐 나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터널 한복판에서 요란한 기적을 듣게 되면 머리끝까지 쭈삣하는 소름기가 전기처럼 온 몸을 전율케 하더라고 한다. 
기차는 터널 안으로 검은 마물(괴물) 같이 들어 오고 그것이 다시 저편으로 빠져 나가는 그 동안이 마치도 영원처럼 길었다는 것이며, 그 때마다 촉촉하다고 끈적거리는 터널속 돌벽에 손텁을 박아 넣듯 바싹 붙어 서서 부디 자식을 보고록까지 죽지 말게 해주십사고 몇 번이라도 되풀이 해 빌었다는 것이다. 
그 분들은 부산에까지 다서 거기 남하해 있는 아들을 찾았으며 오매불망 그처럼도 그립던 아들을 실컷 보면서 그 아들 집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고 얼마전에 그 분들은 세상을 떠났다고 뉴스에서 들었다. 
이제 다시 사랑 얘기로 돌아가 보자 
사랑은 연약한 식물과 같아서 진실로 그 농경이 힘든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의 사랑을 키우기 위해 몇 갑절 더 큰 곤욕과 비탄을 기꺼이 견딜 수가 있다.
사람들이 사랑을 위해 바치는 대가는 때때로 엄청나게도 크기 때문에 심지어는 여기 생명을 내거는 일인들 드물지 않다고 하겠지만, 사랑은 기실에 있어 그만큼 구한 비방의 환희요 더할 수 없는 값어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얻고자하는 사람의 욕구는 뜨겁게 절절하여 도무지 일체의 비교를 넘어 한 가지를 촉구하는 것이라 하겠고 진실로 이와 같이 해도 전혀 그 노고의 손색이라곤 없을 만치의 보람보람찬 긍극의 더취 를 사랑은 능히 가지고 있다. 
잠으로 음식으로도 재물이나 명에로서도 도칠 수 없고 아득히 채을 수수가 없는 인간 본연의 그 허전하고 목마른 자의식을 사랑만은 쉽사리 고쳐주고 구해 낼 수가 있다. 
다만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사랑은 저절로 생겨나는 천해의 식물이가나 예상할 수 기후이 하늘이 내려 주는 비나 눈처럼 우연히 내려오는것도 아니며 더우기 이 세상 간혹의 횡재 같이 뜻밖에 주어지는 요행일 수도 없음을 새삼 되새겨 명심해야 하겠다. 
오직 손톱 밑에 피멍울이 들도록 광야의 바위를 더듬은 끝네 마침내 귀하고 기름진 광맥을 찾아 내는 광부처럼이나 애써 찾고 더 애써 가꾸는 곳에만 피어난다는 것을 잇을 수 없을 듯하다.
사람이 신께 드리는 사랑, 그 유현한 도취인 사랑 
사람이 핏줄을 좆아 부모나 자식 또는 형제들 앞에 샘솟아 오름을 깨닫는 사랑, 그 어여쁜 본농의 적심 
쉬지 않는 그리움에 수없이 밤잠도 설치는 연모, 그 고달프고 연한 애환이 노상 가슴 속을 적시고 있어 자칫 눈물겨워지기도 잘 하는 그토록 아름답고 애련한 이성간의 연애. 
소박하고 아순하며 비교적 고단하지도 않은 사랑, 그 꾸준하고 편안한 인인애  이 모두 얼마나 존귀한 생명의 향연이겠는가. 
사랑은 사람에게 행복을 알게 함에 있어 실로 으뜸가는 요건이요 진정 없지 못할 축복 그리고 유구한 인간 과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