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푸레나무/ 박형권
저 나무, 물푸레나무
안에 들어가 살림 차리면
숟가락과 냄비를 들고 부름켜로 들어가
방 한 칸 내고
엽서만한 창문을 내고
녹차 물을 끓이면
지나가던 달빛이 창문에 흰 이마를 대고
나물처럼 조물조물 버무린 살림을 엿보겠다
나는 엎드려서 책을 읽고 있고
겨울 들판에서 옮겨온 밤까치꽃 같은 여자가 뜨개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
벽에 귀를 댄다
물푸레나무에는 물이 많아서
천장에서 똑똑 물이 떨어져
그릇이란 그릇 죄다 받쳐놓으면
실로폰 소리 나겠지
겨울 내내 물 푸다가 봄이 오겠다
여자하고 나하고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해야 서로 좋아하는 것
나의 하초와 여자의 클리토리스가 파랗게 물이 들도록
끙 끙 끙
어떻게 어떻게 힘주다 보면
나도 모르게 봄을 낳아서
갓 낳은 알처럼 모락모락 김이 나는 세상이 찾아오겠다
그때 창문을 열면?
'작가들의 글 > 내 영혼을 살찌워준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선 / 천양희 / Sia - The Bully (0) | 2024.12.24 |
---|---|
노래 / 강정 / Alison Krauss & Union Station - Home On The Highways (1) | 2024.12.22 |
바닥에서도 아름답게 / 곽재구/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가질 수 있지-김원중 (0) | 2024.12.20 |
손까락 사이에 낀 아침 / Musa Dieng Kala - Kalamune (0) | 2024.12.19 |
멍/ 이정미 / Benito Lertxundi - Askatasunaren Semeei II (0) | 2024.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