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 4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 김중식 /이병우- 연인

밤늦게 귀가 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하루 열 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육체와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돌아온 내 피로의 끝을 보게된다 돈 한푼 없어 대낮에 귀가 할 때면 큰 길이 뚫려 있어도 사방은 막다른 골목 같다. 옐로우 하우스 빨간 벽돌 건물이 집 앞에 있는 데 거기로 들어가는 사내들보다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사내가 더 허기져 보이고 거기 진열된 여자보다 우리집의 여자들이 더 지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 대신 내가 영계백숙 음식을 배달 갔을 때 나 보고는 나보다도 수줍음을 타는 아가씨, 붉은 등 유리 방 속에 한복 입고 앉은 모습이 마네킹 같고 불란서 인형 같아서 내 색시 해도 괜찮..

김재진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김선우 / 얼레지 / Alejandro Filio - Dicen

Alejandro Filio - Dicen  옛 애인이 한밤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자위를 해본 적 있느냐 나는 가끔 한다고 그랬습니다 누구를 생각하며 하느냐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벌 나비를 생각해야한 꽃 이 봉오리를 열겠니 되물었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얼레지…… 남해 금산 잔설이 남아 있던 둔덕에 딴딴한 흙을 뚫고 여린 꽃대 피워내던 얼레지꽃 생각이 났습니다 꽃대에 깃드는 햇살의 감촉 해토머리 습기가 잔뿌리 간질이는 오랜 그리움이 내 젖망울 돋아나게 했습니다 얼레지의 꽃말은 바람난 여인이래 바람이 꽃대를 흔드는 줄 아니? 대궁 속의 격 정이 바람을 만들어 봐, 두 다리가 풀잎처럼 눕잖니 쓰러뜨려 눕힐 상대 없이도 얼레지는 얼레지 참숯처럼 뜨거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