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 11

고독한 낙서 25/3/31/봄 /Krishna Das - Mere Gurudev

우리의 생활 감정이 망명을 입어 그것을 밖으로 불려 나온 그 말들이 어수선하리만큼 팍이나 다양하다. 가령 서정시를 펼처 놓고 볼 때 다른 말들도 많기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다못 번번이 쓰이고 있는 말이 해방까지엔 슬픔 및 그런 계보의 어휘들이였고 보면 우울한 식민치하의 못 심적 심적 상처를 능히 미루어 보게도 된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개체의 이탈을 저마다 깨닫게 됨에서 오는 고독의 관념이 범람해 있고 보면 단연 고독이라는 말이 우리의 심정을 토로하는 대표적? 표현이 되고 있는 느낌이 없지 않다. 누가 나가 고독을 하소연하고 있으며 기실 고독의 의식으로 질식이 될 듯 숨 막혀 보이는 수가 많다 하겠지만 요컨대 우리가 아무리 이와 같은 말을 발견해 내고 속 시원하도록 실컷 써 본다고 해봤자 인간의 내심, 그 ..

김유경 / 섬, 이유/Rene Aubry- Walk The Reeds

이 섬에선 사람이 죽으면 바람에 묻는다 그건 섬의 풍토병 같은 내력이어서 여자는 바다로 떠나 돌아오지 않는 아비의 아이를 박주가리 씨앗처럼 품은 채 바람에 묻혔다 은행나무가 여자의 무덤이며 묘비명이었다 남은 여자들이 제 주검을 보듯 길게 울다 돌아갔다, 섬에서 여자가 죽으면 살아서 뜨겁고 애달팠던 곳이 먼저 젖는다 바람은 젖어 있는 것부터 시나브로 말린다 소금에 간이 밴 깊이를 모두 말려 눈물의 뿌리가 마른 우물처럼 바닥을 드러내면 영혼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이 바람의 법이다 하루 두 번 물마루 끝이 어물어물 붉어지고 꼭 쥐고 있던 바람의 손아귀가 스르르 풀리면 섬은 귀를 열고 듣는다, 먼 바다에서 들려오는 돌아오지 않는 아비들의 빈 배가 웅웅 우는 소리를 죽은 여자는 그 소리에 기대어 바람 몰래 혼자서..

김선우 - 오 고양이!/Jon and Vangelis- Missing

손가락 끝에서 피 한 방울 받아 현미경에 얹는다 보세요, 당신의 적혈구들이에요 몸 밖에서 나를 쏘아보는 내 피 한 방울 수백 마리 고양이 눈알을 삼킨 듯 검사실의 모니터가 오글거리는 눈동자로 발광을 한다 어느 산길에서 갓 낳은 산고양이 두 마리를 보았다 어린 고양이들 혀를 내밀며 가을볕을 냉큼냉큼 받아먹고 있었는데 이뻐서 그저 무심히 쓰다듬었던 노랑털 어린것은 다음 날 죽어 있었다 어린것의 몸에 밴 사람 냄새에 어미는 새끼의 숨통을 끊어놓고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한 방울 피가 방주를 밀어 올리며 범람하는 모니터 안, 싸늘하게 식은 어린것의 눈알과 제 새끼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밖에 없었던 어미의 눈알이 나를 노려본다 어느 깊은 새벽 검은 도독고양이에게 돌팔매질을 한 적 있다 밤마다 쓰레기 더미..

김선우 - 봄날 오후 / Graeme Allwright - La Mer Est Immense

늙은네들만 모여 앉은 오후 세시의 탑골공원 공중변소에 들어서다 클클, 연지를 새색시처럼 바르고 있는 할머니 둘 조각난 거울에 얼굴을 서로 들이밀며 클클, 머리를 매만져 주며 그 영감탱이 꼬리를 치잖아 - 징그러바서, 높은 음표로 경쾌하게 날아가는 징·그·러·바·서, 거죽이 해진 분첩을 열어 코티분을 꼭꼭 찍어 바른다 봄날 오후 세시 탑골공원이 꽃잎을 찍어 놓고 젖유리창에 어룽어룽, 젊은 나도 백여시처럼 클클 웃는다 엉덩이를 까고 앉아 문밖에서 도란거리는 소리 오래도록 듣는다 바람난 어여쁜, 엄마가 보고 싶다 피어라, 석유!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 나를 꽃피워주세요 당신의 모 깊은 곳 오래도록 유전해 온 검고 끈적한 이 핏방울 이 몸으로 인해 더러운 전쟁이 그치지 않아요 탐욕이 탐욕을 불러요 탐욕하는 자..

김선우 - 별의 여자들 /Red House Painters - Michael

태양의 흑점이 커지던 날, 바람이 사라졌다 내가 도달한 다른 우주의 문은 찬바람이 걸어간 산길이었다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지는 산길을 걸어 나는 지구 몸속의 다른 별에 들어섰다 내 몸속에 내가 모르는 다른 우주가 자전과 공전을 거듭하는 것이 훤히 들여다보였고 화창하게 갠 날이 저녁 가까이 날고, 수많은 물고기 뼈들이 공중을 헤엄치며 아무 데서나 사랑을 나누었다 내가 셈할 수 있는 인간의 시간 아득한 저편으로부터 별의 여자들은 내내 이곳에서 살아왔다 잇꽃빛 번지는 노을 속에 여자가 그늘을 묻는다 여자의 푸른 유방에서 죽은 별들이 흘러나왔다 여자가 텅 빈 우주를 자궁 속에서 꺼낸다 지구 표면으로 통하는 모든 문 위에 붉은 부적을 걸고 싶은 날, 내 몸에 묻어온 독기에 찔려 여자의 손이 자꾸 허공을 짚는다 둥글..

도화 아래 잠들다 / 김선우 /Prem Joshua - Darbari NYC -Maneesh de Moor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 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 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

강미정 참 긴 말 / Irfan- Invocatio II

일손을 놓고 해지는 것을 보다가 저녁 어스름과 친한 말이 무엇이라 생각했다 저녁 어스름, 이건 참 긴 말이리 엄마 언제 와? 묻는 말처럼 공복의 배고픔이 느껴지는 말이리 마른 입술이 움푹 꺼져있는 숟가락을 핥아내는 소리 같이 죽을 때까지 절망도 모르는 말이리 이불 속 천길 뜨거운 낭떠러지로 까무러지며 듣는 의자를 받치고 서서 일곱 살 붉은 손이 숟가락으로 자그락자그락 움푹한 냄비 속을 젓고 있는 아득한 말이리 잘 있냐? 병 앓고 일어난 어머니가 느린 어조로 안부를 물어오는 깊고 고요한 꽃그늘 같은 말이리 해는 지고 어둑어둑한 밤이 와서 저녁 어스름을 다 꺼뜨리며 데리고 가는 저 멀리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집 괜찮아요, 괜찮아요 화르르 핀 꽃처럼 소리없이 우는 울음을 가진 말이리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