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글/내 영혼을 살찌워준 詩

당신에게 - 장석주

ivre 2009. 1. 21. 01:19

잎을 가득 피원낸 종려나무,  바다에 내리는 비, 그리고 당신
그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이름입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의 괴로움 숙고 끝에
나는 당신의 사랑을 거절하기로 마음을  굳힙니다
부디 내 거절의 말에 상처받지 않기를 빕니다
나는 이미 낡은 시대의  사람이고
그러니 당신이 몰고오는
야생 수목이 뿜어내는 신선한 산소를 머금은
공기에 놀라 내  폐가 형편없이 쪼그라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나를 가만 놔두세요, 더 정직하게 말하지요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혼자 잠들고, 혼자 잠깨고
혼자 술마시는 저 일인분의 고독에
내 피가 길들여졌다는 것입니다
나는 오로지 어둠속에서
일인분의 비밀과 일인분의 침묵으로
내 사유를 살찌워 왔습니다
내게 고갈과 메마름은
이미 생의 충분 조건입니다
난 사막의 모래에 묻혀
일체의 수분을 빼앗긴 채 말라가는
죽은 전갈과도 같습니다
내 물병자리의 생은 이제 일인분의 고독과 일인분의 평화
일인분의 자유를 나의 자연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거기 당신의 자리에 서 있으면 됩니다
어느해 여름 우리는 바닷가에서
밤하늘에 쏟아지는 流星雨를 함께 바라봤지요
그때 당신과 나의 거리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를 유지한 채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