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낙서도 감정노동이다

고독의 심연에까지 손끝이 닿아 보고 싶었습니다. (배경음악 Lhasa - My Name)

ivre 2009. 9. 23. 04:36
정신을 혹사 하는 데 비해 그 심정이 쓸쓸할때 언제나 바쁘게 자기를 돌 볼 사이 없이 지내면서 마음 속은 노상 비어 허전하고 때때로 미칠것 같을때 나는 자주 감상에 잠기게 되나 봅니다. 바쁘면서 쓸쓸하고 추우면서 쓸쓸하고 언제나 멋대가리 없는 내 바지 자락에 붙어 다니는 집착스런 고독을 어느 땐 빈 방에서 어느 땐 사람들이 많은 한길에서 덥쑥 정면으로 안아 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별볼일 없는 글 나부랑이를 쓰면서도 울컥 핏덩이 같은 고독이 치밀어 오르기를 잘해 정녕 어이가 없어 환장할 노릇 입니다 지금 이 방은 모든것이 어수선하며 밤도둑이 들어와도 탐내어 집어 갈 것이 없을 정도로 납루한 것들 뿐이며 담배 냄새로 찌든 두평 반 남짓한 ..... 허기야.... 고독의 넋두리 따위는 이미 낡고 낡은 얘기 겠습니다만 이 놈이 인생에서 이건 막아 낼 수 없는 계절풍 입니다. 고독은 그 얼굴의 반이 준렬하고 반이 자애로운 인생의 스승이지 싶습니다 (어디 공자왈 맹자왈만 있으란법 있습니까? 이건 고독한낙서 왈 입니다) 오만의 모서리를 깎아 주고 거부하던 손들을 맞잡게 하며 모르는채 지내던 지인들을 다정하게도 해 주더군요. 고독하다는 말은 곧 사람이라는 말이라고 한 이도 있었듯이(누구냐 묻지 마소 기억 안나니 대충 쓰잖소) 고독은 사람이 살아 가는데에 없지 못할 패스포오드 (흠 .. 지갑이 낳겠군) 할 것입니다 때문에 먼 발치로 겁 먹은듯 보고 다니지만말고 일찌감치 정들여 익숙해 져 버림이 상책일찌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독하기 조차 전혀 안 한다면 사람의 시간을 모두 어디에 쓰겠습니까. 사랑하는데 쓰고 고독을 깨무는 데 쓰고 건설에 쓰고 조금은 고상하게 예술하는 데 쓰고 조금은 전쟁하고 죄 짓는 데 쓰고 꿈꾸는 일, 회상 하는 일에 쓰고 죽는 데 써야 할줄 알아야 합니다. 용서 하는 데 쓰는 시간 인내 하는 데 쓰는 시간 모두 좋습니다 물론 떠나버린 이의 행복에 쓰셔두 좋습니다. 스토우 부인이 쓴 <엉쿨 톰>의 얘기 속에 백인 소녀가 죽음에 이르러 자기의 금빛머리를 슬퍼 하는 가족들에게 조금씩 나눠 주는 대목이 기억 나실겁니다 가족이래봐야 대부분이 흑인이 노예요, 외딸과 홀아버지만이 혈연이였는데 그 아버지가 애처로이 이 광경을 바라 보면서 "아가 이빠에게도 그 예쁜 머리털을 좀 주련 ! " 하고 말 했을때 "아버지, 남은 건 전부가 아버지의 것이여요" 라고 대답 합니다 우리도 남는 시간과 남는 마음은 모두 사랑에 쓰면 어떨까 싶습니다 하건만 고독에 쓰이는 시간도 덧없지 않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바쁘게 지내며 줄곳 정신을 혹사 하는 데 비해 더우기 감정이 뜨겁게 태어나는 데 비해 너무나 자주 쓸쓸함을 앓는 이들이여 우리는 눈매가 닮은 벗들 입니다 바라건데 고독도 어루만져 주면서 너그러이 풍성하게 살으십시다. 고독이란 이름의 공원의 물 가고 오며 떠 마시곤 누구나 고개 숙이고 가네 진정 고독을 벗어 날 수 없을진대 고독의 심연애까지 촉수(觸手)가 닿아 보는 그런 분들이 이 곳에 많이 오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