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글/내 영혼을 살찌워준 詩

김선우 - 별의 여자들 /Red House Painters - Michael

ivre 2025. 3. 19. 17:32



태양의 흑점이 커지던 날, 바람이 사라졌다
내가 도달한 다른 우주의 문은 찬바람이 걸어간 산길이었다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지는 산길을 걸어 나는 지구 몸속의 다른 별에 들어섰다
내 몸속에 내가 모르는 다른 우주가 자전과 공전을 거듭하는 것이
훤히 들여다보였고 화창하게 갠 날이 저녁 가까이 날고, 수많은 물고기
뼈들이 공중을 헤엄치며 아무 데서나 사랑을 나누었다


내가 셈할 수 있는 인간의 시간 아득한 저편으로부터 별의 여자들은
내내 이곳에서 살아왔다 잇꽃빛 번지는 노을 속에 여자가 그늘을
묻는다 여자의 푸른 유방에서 죽은 별들이 흘러나왔다 여자가 텅 빈
우주를 자궁 속에서 꺼낸다 지구 표면으로 통하는 모든 문 위에 붉은
부적을 걸고 싶은 날, 내 몸에 묻어온 독기에 찔려 여자의 손이 자꾸
허공을 짚는다 둥글고 푸른 별의 생장점이 꼬리를 끊고 흘러갔다
나는 속죄의 말을 찾지 못했다


구불구불한 꿈을 한없이 걸어 서늘한 산길이 걸어 나온다
인간의 마을이 저물고 내 몸 깊숙한 곳의 뼈들이 오래전 은하수의
수로를 따라 흘러갔다 화창하게 갠 날에 가벼워지는 목숨들, 화창한
저물녘에 별의 여자들이 자기 몸을 비우고 또 비운다 텅 빈 여자의
중심 지구 몸속의 또 다른 별에서 지구가 눈물 한 방울로 뜨거워져 간다.

Red House Painters - Micha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