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네들만 모여 앉은 오후 세시의 탑골공원
공중변소에 들어서다 클클, 연지를
새색시처럼 바르고 있는 할머니 둘
조각난 거울에 얼굴을 서로 들이밀며
클클, 머리를 매만져 주며
그 영감탱이 꼬리를 치잖아 - 징그러바서,
높은 음표로 경쾌하게
날아가는 징·그·러·바·서,
거죽이 해진 분첩을 열어
코티분을 꼭꼭 찍어 바른다
봄날 오후 세시 탑골공원이
꽃잎을 찍어 놓고 젖유리창에 어룽어룽,
젊은 나도 백여시처럼 클클 웃는다
엉덩이를 까고 앉아
문밖에서 도란거리는 소리 오래도록 듣는다
바람난 어여쁜, 엄마가 보고 싶다
피어라, 석유!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 나를 꽃피워주세요
당신의 모 깊은 곳 오래도록 유전해 온
검고 끈적한 이 핏방울
이 몸으로 인해 더러운 전쟁이 그치지 않아요
탐욕이 탐욕을 불러요 탐욕하는 자의 눈앞에
무용한 꽃이 되게 해 주세요
무력한 꽃이 되게 해 주세요
온몸으로 꽃이어서 꽃의 운하여서
힘이 아닌 아름다움을 탐할 수 있었으면
찢겨 매혈의 치욕을 감당해야 하는
어머니, 당신의 혈관으로 화염이 번져요
차라리 나를 향해 저주의 말을 뱉으세요
포화 속 겁에 질린 어린아이들의 발 앞에
검은 유골단지를 내려놓을게요
목을 쳐주세요 흩뿌리는 꽃잎으로
벌거벗은 아이들의 상한 발을 덮을 수 있도록
꽃잎이 마르기 전 온몸의 기름을 짜
어머니, 낭자한 당신의 치욕을 씻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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