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끝에서 피 한 방울 받아 현미경에 얹는다 보세요,
당신의 적혈구들이에요 몸 밖에서 나를 쏘아보는 내 피 한 방울
수백 마리 고양이 눈알을 삼킨 듯 검사실의 모니터가
오글거리는 눈동자로 발광을 한다
어느 산길에서 갓 낳은 산고양이 두 마리를 보았다
어린 고양이들 혀를 내밀며
가을볕을 냉큼냉큼 받아먹고 있었는데
이뻐서 그저 무심히 쓰다듬었던 노랑털
어린것은 다음 날 죽어 있었다
어린것의 몸에 밴 사람 냄새에
어미는 새끼의 숨통을 끊어놓고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한 방울 피가 방주를 밀어 올리며 범람하는 모니터 안,
싸늘하게 식은 어린것의 눈알과 제 새끼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밖에 없었던 어미의 눈알이 나를 노려본다
어느 깊은 새벽 검은 도독고양이에게 돌팔매질을 한 적 있다
밤마다 쓰레기 더미를 파헤쳐놓는 도둑고양이
산으로 가,비굴하게 인간의 쓰레기 따위 뒤지지 말고
돌아가 제발,돌멩이를 던지던 내 맨발이
가로등 불빛에 찔려 피 흘리던 밤
후미진 담벼락을 걷던 달 속에서
눈썹 성근 새끼고양이 밤새 울고
보아라 무엇인가 그리울 때마다 너희가 흘려놓은 저 적의를
찢어발겨 놓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얼굴을 쳐들고 나를 쏘아보던
이글거리는 눈알, 오 내 피 속의 고양이, 내 안의 그리운 것들이
나를 노려보기 시작한다
오늘도 몇 구의 고양이 시체를 넘어왔다
이 많은 고양이는 다 어디서 오는지
국도에 눌러붙은 수많은 고양이 가죽들 길을 물들이면서
천천히, 야금야금, 전시릉 샅샅이 훑으며 스며들다가
폭신한 살에 싸여 식탁 위에 올려진 내 몸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단번에 찢어놓고 간다
식탁에 떨구어진
내 피 한 방울 속에서 나를 쏘아보는 저 수천의 눈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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