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아제베도에게
1965년 1월 6일 새벽 4시.
어제 집에 오자마자 네 액자를 걸었다. 방안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네 냄새.
글(내가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갑자기 네 편지 전부(그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것들)를 벽에 붙이고 싶은 광적인 충동에 사로잡혔다.
나는 왜 이렇게 너를 좋아할까? 비길 수 없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너를 좋아해.
너를 단념하는 것보다도 죽음을 택하겠어.
너의 사랑스러운 눈, 귀여운 미소를 몇 시간만 못 보아도 금단현상(아편 흡입자들이 느낀다는)이 일어나는 것 같다.
목소리도 좀 들어야 가슴이 끓는 뜨거운 것이 가라앉는다. 너의 똑바른 성격, 거침없는 태도, 남자다움, 총명, 활기, 지적 호기심, 사랑스러운 얼굴......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Ich liebe alles an dir).
내가 이런 옛날투의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 좀 쑥스럽고 우스운 것도 같다.
그렇지만 조르주 상드(G.Sand)가 뮈쎄(Musset)와 베니스에 간 나이인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나는 좀더 점더 불태워야 한다고 분발(?)도 해본다.
나의 지병인 페시미즘(Pessimismus)을 고쳐줄 사람은 너밖에 없다.
생명에의 애착을 만들어 줄 사람은 너야. 오늘 밤 이런 것을 읽었다. '사랑? 사랑이란 무엇일까? 한 개의 육체와 영혼이 분열하여 탄소, 수소, 질소, 산소, 염 기타의 각원으로 환원하려고 할 때 그것을 막는 것이 사랑이다' 어느 자살자의 수기 중의 일구야.
쟝 아제베도!
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 줘! 정말 너의 도움이 필요해.
나도 생명있는 뜨거운 몸이고 싶어. 가능하면 생명을 지속하고 싶어.
그런데 가끔 가끔 그 줄이 끊어지려고 하는 때가 있어. 그럴때면 나는 미치고 말아. 내속에 있는 이 악마(Totessehnsucht)를 나도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있어. 악마를 쫗아줄 사람은 너야. 나를 살게 해줘.
다시 장에게
1965년 1월 6일 정오경.
눈이 멎지 않고 내리고 있어. 눈 속을 헤메고 싶어. 너는 무얼하니?
모든 일에 구토를 느껴. 단지 의외로 <태양병(Sonnenseuche)>의 번역이 나를 몰두시키고 있어. 이런 내용 그리고 이런 느낌이란다.
태양병균―비정상적인 강한 열 속에서만 생존하는 / 나는 토오라는 표범과 사는 말레이 여자 마라와 만났다. / 토오는 나를 미워한다. / 나는 마라 몰래 토오에게 구하기 힘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아직 따스한 암소고기를 먹인다.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 길들지 말라고, / 갈색 피부의 마라―이 여자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 여자를 소유하고 있기는 하나 / 나... '토오를 내쫓아' 마라... '나는 토오가 없으면 잠이 안와요' / 나는 토오를 미워한다. 토오는 마라의 애정의 일부를 뺏고 있다. / 우리는 대륙의 절반을 뒤덮고 있는 열파의 한가운데 있는데 춥다. / 흰 여자가 흰 남자를 사랑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갈색 남자가 갈색 여자를 사랑할 때는? / 내 심장은 전쟁을 원하고 있다. 나는 마라를 사랑한다. / 마라는 일어선다. 나체로 갈색으로 사랑하면서 / 나는 태양병이 무섭다. / 그리고 우리의 피는 소리를 지른다. / 호수 한가운데서 나는 세계를 향하여 소리질렀다. '마라!' 마라, 우리의 사랑은 안 죽어. / 태양은 나를 죽일 것이다. / 갑자기 광적인 생각이 엄습해 온다. 죽음이 구제를 갖다 줄는지도 모른다라는. / 그러나 숲의 호재는 광기다. 사랑하는 불, 사랑하는 숲이여, 너는 죽어야 한다. / 나는 마라를 고통 없이 사랑할 수 있으리라. / 나는 한계 위에 서 있다. 아, 마라.
진한 향내 나는 H·노바크의 이 열 같은 표현 속에 나는 서늘함을 느끼고 있다.
― 전혜린
: 이것이 그녀가 이 세상에 남긴 최후의 편지가 되었다. 그녀가 죽기 나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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