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도 감정노동이다

어느 몽상가의 35mm 예찬론

ivre 2024. 10. 28. 14:38

35mm 렌즈는... 당신과 가장 알맞는 거리를 알고 있다

당신을 적당히 당길 줄 알고 밀어 낼줄 안다. 적당히 외곡할 줄도 알아서 당신을 더 아름답게 착시할 수 있다. 그러기에 당신은 더 사랑 할 수 있다.

 

35mm 렌즈는... 슬픔을 가장 잘 표현한다.

"사진은 슬픔을 찍는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이 사진에서 슬픔을 표현하지 못했다면 "그건 분명 실패한 사진이야" 라고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내 사진에서 슬픔을 찾아 내지 못했다면 나 역시 내 사진이 실패 했다고 깨끗이 인정 하겠다.

기쁘고 즐거운 포즈 뒤에도 슬픔은 숨어 있다 기쁨과 즐거움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슬픔은 슬픈자만이 찾아 낼 수 있다.

 

35mm 렌즈는... 사람의 마음을 찍는데 알맞다.

사진은 마주친, 마주한 사람을 찍는 것이다. 내가 셔터를 누를 때 그 사람은 내가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

"나를 향해 미소 지어 줄 수 있겠니?" 하는 내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35mm 렌즈를 단 카메라를 가리키며 피사체를 향해 눈을 살짝 찡긋한다. 그들은 잠시 나를 응시 한다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셔터를 누른다.

35mm렌즈는 나를 피사체 가까이 내가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는 거리까지 인도해 그들의 마음을 전한다.

 

35mm 렌즈는... 남겨진 것들을 보게 한다.

나는 주로 혼자서 여행을 한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쓸쓸한 것들, 슬프고 외로운 것들, 혼자 남겨진 것들, 하찮은 것들, 평범한 것들,숨어 있는 것들에게 눈길이 간다. 그런 것들을 잘 찍는 방법은 단 하나 "가까이 다가가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는 수 밖에 없다" 내가 만약 망원렌즈나 줌렌즈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들에게 다가가지 못했을 것이다.

 

35mm 렌즈는 작고 가볍다.

나는 여행자다. 주로 걸어 다니기 때문에 커다랗고 무거운 카메라 장비가 불어 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작고 가벼운 35mm 최선의 선택이다. 가격은 그다지 비싸지 않아서 (밝기만 조금 욕심을 줄이면 F/2.0)진흑이 묻거나 바닷물이 조금 묻어도 신경쓰지 않는다. 나에게 단 하나의 렌즈를 선택하라면 주저없이 35mm렌즈다.

 

35mm 렌즈는 .... 분명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처음 구입한 렌즈는 24-70mm 렌즈였다. 상당히 비싼 렌즈였다. 그 후로 17-35mm f.4.5-5.6  50mm f/1.8  85mm f/1.4 70-200mm f2.8  24mm f/2.8 차례로 구입 했다. 이 렌즈들을 다 들고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렌즈들으 싫어졌다.

뭐라고 할까 음... 그저 그런 모두가 똑같이 메고 다니는 백팩을 나 역시 메고 다닌다는 느낍이 들었다고 할까? 그래서 지금은 왠만하면 35mm와 17-35mm 70-200mm만 넣어 다니다 보니 가방이 한결 가벼워 졌다.

적어도 여행을 하고 사진을 찍는 약식에 관해 이야기 한다면 줌렌즈는 독이다. 대신 단렌즈를 선택 한다면 한단계 더 성숙한, 좀더 분명한 시선을 가지고 사진을 찍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