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낙서도 감정노동이다

이것이 일인분의 고독일까? (배경음악 Iren Reppen - Ikke En Kjaerlightssang)

ivre 2009. 10. 24. 02:17


고독은 비와 같다. 저녁 비 바다에서 올라와 먼 평애에서 언제나 고독한 하늘오 올라 간다 그리하여 보로소 도시위로 떨어진다. 저녁 으스음 비는 내린다. 모든 거리가 아침을 행할때 아무것도 찾지 못한 육체와 육체가 실망하여 슬프게 헤어져 갈 때 그리고 시새우는 사람이 함께 하나의 침대에서 잠자야 할때 그 때 강물과 함께 고독은 흐른다. 위의 글은 릴케의 시 <고독> 이란 작품명이 붙어 있다. 방금 일어난 몸으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전화의 후유증일까. 난 가까운 바다를 응시하며 불현듯 이 시가 생각났다. 계절은 어느덧 간사한 살깟이 느낄만큼의 가을로 가을로 접어 들었다. 초록도 고비를 넘어 지친듯이 검푸르며 그 끄트머리는 태양의 열이 부산한 당근질로 지지는 것도 이제 그칠때가 된것 같다. 더는 내어 디딜 수 없는 가파른 한계점, 지금 천지의 초록 빛깔들이 거기에 이마를 부딪고 있음을. 고독을 옮긴 릴케의 시 속에서 적막한 내 방에 울려 퍼지는 한통의 전화벨 소리에서 건조한 종착지의 사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어떠한 변모조차 기대 하기 어려운 여건의 우리 안의 사람은 갇히고 소리도 없는 아우성이 하늘과 평야와 강물에 뒤섞여 수증기 같은 외로움으로 서려 오른다. 고독은 공기와도 같고 사람은 누구나 또 아무 데서나 자기의 페활량만큼 고독을 드리마시며 살도록 만들어진듯 싶다 그러면서 향용 고독에 익숙치 못함은 끝내 고독의 용납, 그것을 망설이기 때문이다. 또 그 성질도 가지가지다. 가질 수 없는 사람을 언제나 생각하며 있는 그런 민망스런 습관일 적도 있고, 안개속에서 겨우 몇 점의 고갯마루를 시야에 담아내듯 회상속에 떠올리는 불망(不忘)의 사람과의 철늦은 대화, 그런 것일수도 있을것이다. 단순한 시행착오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모순 바라던 것을 겨우 얻었을 즈음에 자기의 시간이 또한 다해 버린 것을 알게 되는 일이니, 도저히 회복할 길 없는 멍어리를 안은 채 창창한 세월 앞에 홀로 남게 된이의 감회를 미루어 볼 수도 있으리라 여정을 벗해 주는 시가 있지만 여정과 시와 내 마음의 골짜기마다에 골고루 녹음을 던지는 상시의 길벗, 당신이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