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낙서도 감정노동이다

궁리 (배경음악 Andreas Scholl - She Moved through the Fair (Andreas Scholl - Wayfaring Stranger..중에서)

ivre 2009. 11. 5. 05:14

여자는 사랑해 주려고 했고 사실상 사랑하고 있었는데 남자에겐 부자유한 고삐와 같다고 하면 이렇듯 엄청난 부조리에서 우리는 먼저 무엇을 고쳐야 합니까. 남자의 성품? 여자의 집착? 아니면 양쪽을 반씩 고쳐야 합니까. 아니면 그대로 내버려둬야 합니까. 하루 왼종일 내리는 저 비를 바라보며 오늘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난 이런 생각에 도달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쳐야 한다고..... 왜냐하면 고치는 그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것에 맞추어 주는것이, 되도록이면 갖고 싶어 하는 것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 선물의 예절이기 때문 입니다. 타산을 초월해서 밑져주면, 분노를 누르고 견디면, 유순한 자애를 배워 기다리면 끝내 저들이 다시 돌아 오고 저들(남자)의 영혼을 여자의 가슴안에 기항(寄港) 시킬 것을 왜 모르십니까? 승부는 언제나 맨 끝에 그 모습을 알아 봅니다. 인생의 승산을 길게 잡는 사람 가슴은 적더라도 궁리는 훨씬 유장하게 말입니다. 그대는 승부를 빨리 보려고 하며. 가슴은 큰데 궁리는 외소하단 생각은 왜 해보지 않으십니까. 무엇이나 시작한 보람을 거두려면 중간에서 포기 하지 말어야 합니다. 가던 길의 반쯤에서 돌아오면 출발하지 않은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농사나, 건축이나 사랑에 있어서도 매 한가지 아니겠습니까. 중간에서 손을 빼면 무효, 잠시동안에 쓰러지는 환상에 불과 하다는건 왜 모르십니까. 그런데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겁니까? 아! 그렇습니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승자란 얘기를 고상하게 말하려 했던것 같습니다. 이제 비로소 우리는 마침내 다 고독해 지는 겁니까? 그리고 평범한 의무와 굴곡 없는 상심의 되풀이, 단조한 긴 시간들앞에 패배하고 말겁니까? 선녀를 사랑한 나뭇꾼의 용기가 부러운 날입니다. 평강이를 아내로 얻은 온달이가 부러운 날입니다. 당신은 무엇이 부러운 날입니까? 이제 우리는 선택하여야 합니다 건져 올리는 삶과 썩혀서 떨어뜨리는 삶의 두가지 중에서 어느 쪽을 그에게 건네줄건인가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신중하게 생각해 보야할 때 입니다. "소유는 적으나 존재는 넉넉하다" 란 말이 오늘 나의 위안 입니다. 빌어먹을 비가옵니다. 배도 고파오고 뱃속을 채울 무언가를 찾아 어슬렁 어슬렁 굶주린 타조처럼 나서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