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내여,그대의 속마음을 비추는 벌거벗은 황촉 앞에, 기도가 끝난 후 빈 예배당의 쓸쓸한 제대 모습이 고요히 비쳐 오르는 기간을 나는 안다.
- 시든 꽃가지에서 죽음의 향기를 맡는 듯이 그처럼도 지쳐 있는 그대의 육체와 피로한 정신을 안다.
- 또한 혼신으로 안겨 들 수 있는 따습고 한결같은 포용에의 눈물겨운 목마름을 진정 다 알고 있다.
- 생명을 앓고 있는 이여,사랑을, 사랑 중에도 뼈마디마다 아파오는 비련을 앓는 이여,불로 구워서, 몇 번이라도 불로 구워서 두드려서 만드는 시련의 구리 기둥을 보아라.가시덩굴에서 피는 장미를 보아라. 눈부신 그 기쁨을 보아라.
- 사내여, 빛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기쁨도 많이 남아 있다 자유로운 예술심도 애무할 수 있는 상냥함도 기도의 말들도 그리고 바람과 별들과 친구들이 남아있다.
- 소중한 시간이 남아 있으며 여기에 더하여 그 사람이 남아 있지 않느냐. 죽고서도 다시 살 너의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남아 있지 않느냐.
- 사내여, 결코 절망하지 않는 가슴이여. 땅 끝에서 울려오는 노래와 땅 끝에서 울려오는 먼 소망의 발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내, 밤 사이에 떨어지는 나뭇잎의 건조한 작은 음향에도 무심할 수 없는 그 섬세한 감성의 살결이여, 늦은 봄철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보라 빛 엉겅퀴처럼 불쑥불쑥 치받는 그대의 회의를 또한 내가 안다.
- 그대의 신께서 나들이 가신 몇 날, 의심하는 실뱀이 숨어 들어와서 그대의 의지와 사랑을 깨물었고 뒤엉킨 실뭉치만의 어수선한 베틀앞에 그대 혼자 일 하라고 시키시던 그 때를, 의사의 집도를 기다리며 수술대 위에 누워서 있는 병든 뇌수의 환자처럼 차라리 신경을 죽이는 마취의 방법만이 이때의 가장 좋은 구원이라 믿어지는, 오뇌의 질식을 또한 안다.
- 그대가 치룬 고독의 수고를 안다. 일각의 유예도 없는 절대의 진통으로 부터 하나의 새 생명을 품어 내던 그때, 때로는 그대의 번뇌는 주고 또 주어도 매양 준 것이 모자란 것만 같은 현실에의 조바심에 뿌리를 두었음을 나는 안다.
- 배가 고픈 어머니도 아기에게 기꺼이 젖을 먹이거늘 가령에 받은 사랑이 적었다고 해도 그대가 내어 주는 사랑의 도여(堵與)만은 결코 줄이지 않음을 진실로 안다.사소한 부주의로 하늘의 날개옷을 태워 버린 그대의 미혹을 내 어찌 모르랴..끝내 지워 지지 않는 오욕의 화인 그토록 진한 수심을 어찌 하면 좋았을까. 오직 용서의 한 말씀을 들려 주시도록까지 태초의 할배 할미에게 엎드려서 울던 피 묻은 회오, 그 마음을 내가 안다.
- 과거와 미래의 고개.그 중간쯤의 하늘에 커다랗게 걸린 낮달을 본 다. 눈 감으면 눈시울 속에서 새로 몇 번이고 되쏘아 나는 이 운명의 달은 또 어떻게 하랴.사내여,길지 않은 한 평생에 염원과 그리움만 너무 많아 민망스럽다.
- 전신의 갈망이 마침내 둥우리를 벗어 던지고 태양 위를 날아가는 갈매기 같기를 꿈 꿀 때, 아니 한번 총구를 벗어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한 발의 탄환이 되려 할 때, 그대는 무슨 이름의 태초의 할배에게 비느냐. 이제 적당한 어둠이 깔렸다. 타고르의 시 한 구절 을 외워 본다.
- 내 마음이여 조용히, 이들 나무는 기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등을 켜마.
이제는 우리의 남은 얘기를 마저 해야지. - 밤마다 그 에 끼리끼리의 어족이 모여 들 듯이 유리도 유사한 눈매를 모으며 한 자리에 전류 둘려 앉자.
- 사내여, 얼마쯤은 늘 상처 입은 짐승을 닮아 있는 그대. 한 번씩 손이 시린 노여움과 불 덤불같이 뜨거운 혼란에 휘말리는 그대의 비애, 실로 누가 만들었나를 따지지 말라.
- 사내여, 처음으로 슬픔을 알게 한 이가 처음으로 기쁨을 가르쳤고 그대의 사랑 샘솟게 한 사람이 또한 그대의 넋에 영원한 글씨를 새기었느니, 그대의 눈물, 옷섶 가득히 받아간 모든 사람을 위해 가장 맑은 눈물을 담아 보내고 부디 다함없는 축복의 기도를 올리어라.
- 사내여, 어느 훗날, 이별의 거대한 강이 그대를 안아 생명의 유구한 피안인, 고요한 죽음으로 옮겨 주면 그대의 기억은 오직 옥배(玉杯)의 하나쯤에 머물게 되고 그대의 영혼 비로소 편안하리라.
'고독한낙서도 감정노동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독한 낙서 (0) | 2010.03.31 |
---|---|
여보게 나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워 보지 않겠는가 이런 음악을 들으며 말일세 배경음악 / Abraxas - Moje Mantry (0) | 2009.11.23 |
궁리 (배경음악 Andreas Scholl - She Moved through the Fair (Andreas Scholl - Wayfaring Stranger..중에서) (0) | 2009.11.05 |
이것이 일인분의 고독일까? (배경음악 Iren Reppen - Ikke En Kjaerlightssang) (0) | 2009.10.24 |
모습들 (배경음악 Christy Moore -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외4곡) (0) | 2009.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