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0 2

인공의 천국에서의 한 때 / 빗물

처참히 상처 입었던 그가 불덤불에서 꺼낸 칼날 같은 신생을 외치게 하면 좋겠다. 불로 구워서 두드려서 날을 세운 청결하고 강한 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을 쓸 적에 지극한 애련을 혼신으로 깨닫게 하면 더욱 좋겠다. 애련은 우리만큼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곱씹게 되는 참 뼈저린 삶의 미각 아니던가. 따습고 성실한 눈이 떠서 삼라의 모든 점을 새로이 살펴내게 하였으면 좋겠다. 집을 받들고 선 주춧돌이 그 파묻힌 밑뿌리까지도 떼놓지 않고 품어 냈으면 좋겠다. 생명 있는 것이 다다르는 마지막 처소를 묵상하고 마지막 모습들을 낱낱이 공손하게 어루만지게 하면 좋겠다. 울음이려면 울음이게 하고 소망이게 하려면 또 소망이게 하였으면 좋겠다. 행여는 뿌듯한 응감에 속으로 죄어드는 가슴, 무겁게 엎드린 침묵 ..

엘리제를 위하여 / 장수철 / Boubacar Traore - Mouso Teke Soma Ye

엘리제는 어디 있는가. 트럭이 후진하며 들려주는 엘리제를 위하여. 능수버들 낭창낭창 흩날리듯 못갖춘마디의 도입부가 길바닥에 뿌려지고 트럭이 신중하게 후진할 때에 맞춰 속 깊은 엘리제가 후사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비탈의 이면을 분산화음으로 쓸어내리면, 골목길 바닥에 앉아 있다가 주섬주섬 공깃돌을 들고 일어서는 아이들. 비탈을 오르다 힘을 잃거나 잘못 들어선 막다른 길에서 돌아 나올 때 홀린 듯 사는 내가 갑자기 낯설어 다시 나에게로 들어설 때 걸어온 길 위 올망졸망 피어난 이끼꽃 식구들까지 처연히 짓밟으며 나는 언제나 못갖춘마디로 되돌아와야만 했구나. 트럭이 후진하며 들려주는 엘리제를 위하여. 나의 엘리제는 어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