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히 상처 입었던 그가 불덤불에서 꺼낸 칼날 같은 신생을 외치게 하면 좋겠다.
불로 구워서 두드려서 날을 세운 청결하고 강한 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을 쓸 적에 지극한 애련을 혼신으로 깨닫게 하면 더욱 좋겠다.
애련은 우리만큼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곱씹게 되는 참 뼈저린 삶의 미각 아니던가. 따습고 성실한 눈이 떠서 삼라의 모든 점을 새로이 살펴내게 하였으면 좋겠다.
집을 받들고 선 주춧돌이 그 파묻힌 밑뿌리까지도 떼놓지 않고 품어 냈으면 좋겠다.
생명 있는 것이 다다르는 마지막 처소를 묵상하고 마지막 모습들을 낱낱이 공손하게 어루만지게 하면 좋겠다.
울음이려면 울음이게 하고 소망이게 하려면 또 소망이게 하였으면 좋겠다.
행여는 뿌듯한 응감에 속으로 죄어드는 가슴, 무겁게 엎드린 침묵 이게라도 해 주면 좋겠다.
아무거나 먹는 이는 이처럼의 배고픔을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의 손으로 주는 어느 어기찬 빛으로만 정복한 충만을 알고자 한다.
비싼 정신의 값진 사나이만이 마시게 할, 한 고귀한 잔이 가득히 눈부시게 채워 넘치게 되도록 까진 비싼 고뇌와 한량없는 기다림을 쌓아 올릴밖에 없다. 그 사람의 영혼 속 결코 갈라낼 수 없는 혈연의 지채로서 나를 받아주게 되도록 까진 한 세월, 온갖 목마름과 헐벗음도 견디며 더욱 내핍해야 한다. 온갖 욕망을 거두어 마치도 진하게 털어낸 한방의 약과 같이 단지 한 모금의 갈망에 모두였사오니 지금은 이를 내가 먹도록 허락해 주면 좋겠고 그의 손이 이 그릇을 잡아주게 하였으면 좋겠다.
우리는 절망에서 출발하는 소망의 반려이기를 바란다.
한 발도 더 내디딜 수 없는 절대의 단애 큰 바다의 물빛보다 더 짙은 감청의 하늘을 우러르며 망부석이 되어버린 어느 여인처럼 막무가내의 통곡을 터뜨리던 그때, 높고 높은 천심의 그 멀고 아득하고 차가움에 소스라치며 홀연 소름 돋치듯 솟아나던 새 소망의 전류가 전신을 휩싸던 일은 아무래도 범연치 않은 홍역의 징후였을 것이다.
그 사람의 영지.
누구도 파괴하지 않고 둔, 그중 깊은 곳의 광맥까지를 헤집어 내는 일엔 먼저 그 사람의 자신의 승인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실로 그 때문에 내 희구와 갈망이 역력한 못 하나를 나는 이 지점에 꽂아두게 되었다.
2011.3.22
그의 자의식의 형평, 속에서부터 다듬어 올릴 자의식의 질서를 위해 섬세한 관심과 쉼 없는 궁리를 기울였다. 그리고 이는 심히 당연한 나의 예절이었다고 여기고 있다.
불시에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과의 비참. 나도 헤일 수 없으리만큼 내 갈망의 나무에서 진흙 위에 떨어져 뒹구는 비참을 되풀이했다.
한 사람의 내전, 그중 은밀한 처소에까지 들어가려는 일을 결코 손쉬워한 적은 없었으며 한 발씩 다가서는 겸허 속의 염원과 스스로 붙잡아 세우는 성급한 바람에의 경고를 이 또한 조금인들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진수, 그의 전부를 캐어내고 여윈 산야에 빛을 던지며 그의 이름으로 꿈과 활기와 축복을 나누어 주고 싶었다.
청신한 창조력이 넘쳐흐르고 만인의 가슴에서 사랑과 협동이 뿜어나게 하고 싶었다.
그의 말을 내가 말하고 그의 어둠인들 내가 나누어 주저 없이 함께 어두워지려 했다.
그의 긴 밤이 불면에 손 잡히면 나도 허름한 나무의자에 앉아 눅눅한 긴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싶었다.
박혔던 물을 흐르게 하고, 잠자던 숲을 깨워, 이 모두를 한 가지 성질의 숨결에 담에 가슴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둥둥 북소리가 울려왔고, 음악을 들으면 가락마다 선연히 혈액이 묻어 나오는 내심의 충혈, 전신을 줄달음치는 기이한 충격, 참을 수 없는 통증은 또 무엇 이였는가.
비가 수직으로 꼬꾸라져 죽어가고 바람에 실려 오던 그 사람의 음성. 아아, 눈도 아파오는 태양 아래 나간다. 그가 바로 그 햇살의 한가운데서 나를 불렀으므로.
스스로의 정신의 가장 진한 진실에 엎드리게 하던 그 현란한 어지럼증. 갈수록 더욱 조갈을 끼얹어 주는 감정의 실련, 나는 이 열에 미치며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되어 간다고 알면서 끝내 나를 건져 올리는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사람임을 조용히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무류의 이 감정과 그지없이 눈물겨운 긍정의 반복을 뉘라서 짐작할 수 있겠는가.
아득한 도정, 새하얀 길머리에서 죽도록의 염원도 반분의 로 나누는 길벗.
모든 욕망과 낱낱의 신뢰도 등분으로 쪼개는, 둘도 없는 동지로서 그를 택하게 된 이 피 묻은 필연이야 몇 번이라도 새로이 확인할 수 있고 내 자율의 의지로써 한량없는 되풀이로 거듭 또 거듭 선택하게 될 그 일임을.
이는 하나에서 둘로 모이는, 비탄과 좌절에서 새 소망에로 솟구치는, 잠시의 시간에도 평생의 의미를 다 주는, 뜨겁고 줄기찬 향심.
이건 어째도 사랑이다.
더없이 정결한 불과 불무더기의 그 용광로 안에 내가 던져져 들어가는 일, 만약에 그렇지가 않다고 하면 내 전신, 내 영혼에도 어찌 이처럼의 거센 전율이 일겠는가.
나는 허리 구부린 지하의 암반이 되고자 한다. 그의 삶을 괴어주고 큰 바다로 업어 넘길 수심의 그 헤일 수 없는 물기둥이 되고자 한다.
높고 외로운 뜻과 또 사명.
그 남김 없는 성취를 위해 축원의 제상을 차리고 연이어 촉광을 돋우고자 한다.
지친 그 사람을 몇 번이라도 돌아와 쉬게 하는 영원한 기향지. 추은 첫새벽의 깸이 없는 안식의 밤이 되고자 한다.
서러의 진상을 넘치거나 모라라지 않는 적의의 관여로써 서로 돌보고 물 주어 가꾸지 않는다면 사람의 정인들 무슨 값어치가 있겠는가 평정과 균형을 살펴 정돈하며 시간을 선용하며 통틀어 분발하는 어린이처럼 우리는 분발하여야 한다.
비록 절절한 슬픔이더라도 아무쪼록 광활한 초원의 풍성한 풀내음을 풍기며, 이 봄 초록을 깨워내며, 그 수액의 방울방울조차 유용한 혈액이 되어 감돌게 하는, 향기롭고 기름진 그런 슬픔으로 키워야 하겠다. 그렇지도 못하다고 하면 사람의 감정이란 단지 허망의 모래밭에 뿌리는 순식간의 이슬에 불과할 것이음을.
순박하고 관용을 하는 여인.
비록 떠나간 사람이라도 돌아오고 싶으면 다시 마음 놓고 되돌아오게 하는 따습고 윤택한 옆자리를 그를 위하여 마련해 놓고, 강박을 느끼게 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사이에 두며 그를 따라 어디까지라도 갈 수 있는 그 참을성 있는 희망.
새벽에 눈을 뜨면서부터 밤 깊이 지친 신경을 달래어 주는 얼마간의 잠에 안겨들기까지 전혀 쉼 없이 내닫게 되는 이 줄기찬 격정의 질주.
내가 왜 이렇게 고뇌하느냐고 울부짖는 수많은 젊은 연인들의 화상이나 혹은 무참한 총구로 쏘아 뚫려서 선혈마저 화약의 내음을 섞어 뿜는 그런 상처이더라도, 부디 사람이 익히는 무언가 고귀한 생명의 교훈을 이 속에서 깨쳐내게 했으면.
삶이란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또 하나의 원리를 가르친다. 우리가 거치게 될 몇 고비의 허탈한 좌절과 또 크고 작은 과실에 대하여도 응분의 의기와 회오로써 이를 회복하며 궁극의 구원에서 결코 이탈치 말게 했으면 좋겠다.
누구라도 자기의 영혼을 끈질긴 미혹의 늪으로부터 건져 올리지 못한다면 흡사 태어나지 않았음과 같이 무위로써 존재의 종말을 닫게 된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할아버지와 할미의 조금만 본뜨게 하시고 서로의 진흙을 간절히 헤쳐 주며 갈수록 더 사람의 광택을 들추어내도록 도와주길 빌어 본다.
사람의 못 갈망도 단지 그 갈망으로만 단지 그 갈망으로만 태우려 하면 쉽사리 불 꺼지며, 영겁의 불의 한 오라기 실밥에나마 연결되어 있어야만이 줄지 않는 기름에 생명의 심지를 담가 있는 그건 것이 된다. 정녕 우리의 볼을 지켜보며 있는 이 고단한 심중에 영겁의 한 톨 불씨를 섞어 불태웠으면..
태초의 할아버지와 할미여
참으로 많은 걸 베풀어 주셨습니다만, 너무나도 아직 저는 굶주리옵니다. 거듭 뢰옵거니 정해진 좌석에서 누구보다 저는 목마르게 언제나 버려져 있었습니다. 이제 그를 내 덧없는 벗으로 허락하시고 영영 주신 채로 두신다 하오면 비로소 충족의 참뜻을 익히게 될 것입니다.
내 영혼의 섬약한 살결은 이 또한 그의 영혼의 속살을 맞이하여 촘촘히 신선한 촉각을 일으켜 세우며 충족의 천부를 채우는 귀한 포만에 있게 되고, 가장 맑은 눈물을 샘솟게도 하올 겁니다. 사람의 생성을 그 사람과 저의 생성도 함께. 주관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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