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도 감정노동이다 32

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고독한낙서 낭송)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 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

당신에게 / 장석주 (배경음악 Gurdjieff, Tsabropoulos- Armenian song)

잎을 가득 피원낸 종려나무, 바다에 내리는 비, 그리고 당신 그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이름입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의 괴로움 숙고 끝에 나는 당신의 사랑을 거절하기로 마음을 굳힙니다 부디 내 거절의 말에 상처받지 않기를 빕니다 나는 이미 낡은 시대의 사람이고 그러니 당신이 몰고오는 야생 수목이 뿜어내는 신선한 산소를 머금은 공기에 놀라 내 폐가 형편없이 쪼그라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나를 가만 놔두세요, 더 정직하게 말하지요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혼자 잠들고, 혼자 잠깨고 혼자 술마시는 저 일인분의 고독에 내 피가 길들여졌다는 것입니다 나는 오로지 어둠속에서 일인분의 비밀과 일인분의 침묵으로 내 사유를 살찌워 왔습니다 내게 고갈과 메마름은 이미 생의 충분 조건입니다 난 사막의 모래에 묻혀 일체의 수분..

강연호 - 마음의 서랍 (고독한낙서/낭송)

이제는 완전히 지워버렸다고 자신했던 아픈 기억들 바늘처럼 찔러올 때 무수히 찔리면서 바늘귀에 매인 실오라기 따라가면 보인다 입술 다문 마음의 서랍 허나 지금까지 엎지르고 퍼담은 세월 적지 않아서 손잡이는 귀가 빠지고 깊게 패인 흠집마다 어둠 고여 있을 뿐 쉽게 열리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뻑뻑한 더께 쌓여 있는 걸까 마음의 서랍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힘에 겨워 나는 어쩔 줄 모른다 거기 뒤죽박죽의 또 한 세상 열면 잊혀진 시절 고스란히 살고 있는지 가늠하는 동안 어디에선가 계속 전화벨이 울려 아무도 수신하지 않는 그리움을 전송하는 소리 절박하다 나야, 외출했나보구나, 그냥 걸어봤어, 사는 게 도무지 강을 건너는 기분이야, 하염없이 되돌아오는 신호음에 대고 혼자 중얼거리듯 우두커니 서서 나는 마냥 낯설기만..

빨래 - 강연호 (고독한낙서/낭송)

빨래들을 펼쳐 녹이며 생각했습니다. 내 대신 아랫목 차지한 빨래들을 용서하듯이 이제 희미한 청춘의 윗목으로 밀린 그대 향한 그리움도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이 나이쯤이면 사랑도 뜨뜻미지근한 거라고, 그렇게 뻣뻣하던 노여움과 칼날 선 슬픔 따위도 세월 흐르면 부드럽게 풀어지는 거라고 생각 속에서 또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허나 아랫목을 차지한 빨래들은 녹을수록 다시 젖고 있었습니다 녹을수록 다시 젖는 마음은 마냥 어쩌지 못했습니다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꿈은 또 하나의 쓰레기 봉투이다 / 배용제 (낭송:고독한 낙서)

밤새 고양이가 할퀴고 간 쓰레기 봉투 안, 내가 헝크러진 채 쏟아진다 몇 장의 고지서이거나 구겨진 낙서 조각으로 또는 삼키지 못한 음식물 찌꺼기가 되어 역겨운 냄새를 풀풀 날리고 있다 그것은 살이 뜯긴 앙상한 과거이거나 버려진 기억의 나, 그러한 나를 간혹 꿈속에서 만날 때가 있다 낯익은 형상들이 모퉁이마다 뒹굴고 일그러진 표정을 가진 기억에 꿈은 축축한 땀을 쏟으며 한없이 어두워진다 꿈이 되풀이될수록 더욱 많은 내가 들어찬다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곳으로부터 압착된 무수한 나는 천천히 썩어간다 꿈은 모두 악취로 가득하다 나는 연신 코를 막으며 삐져나온 것들을 봉투에 쓸어담아 입구를 단단히 동여맨다 묻혀야 할 흔적의 오수가 흘러나온다 날카로운 빛이 꿈의 벽을 할퀴며 지나간 아침, 얇은 꿈에 구멍이 나고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