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글 91

엘리제를 위하여 / 장수철 / Boubacar Traore - Mouso Teke Soma Ye

엘리제는 어디 있는가. 트럭이 후진하며 들려주는 엘리제를 위하여. 능수버들 낭창낭창 흩날리듯 못갖춘마디의 도입부가 길바닥에 뿌려지고 트럭이 신중하게 후진할 때에 맞춰 속 깊은 엘리제가 후사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비탈의 이면을 분산화음으로 쓸어내리면, 골목길 바닥에 앉아 있다가 주섬주섬 공깃돌을 들고 일어서는 아이들. 비탈을 오르다 힘을 잃거나 잘못 들어선 막다른 길에서 돌아 나올 때 홀린 듯 사는 내가 갑자기 낯설어 다시 나에게로 들어설 때 걸어온 길 위 올망졸망 피어난 이끼꽃 식구들까지 처연히 짓밟으며 나는 언제나 못갖춘마디로 되돌아와야만 했구나. 트럭이 후진하며 들려주는 엘리제를 위하여. 나의 엘리제는 어디 있는가.

권경인 / 슬픈 힘 / Nick Drake - Pink Moon

슬픈 힘 - 권경인 남은 부분은 생략한다 저 물가, 상사화, 숨 막히게 져내려도 한번 건넌 물엔 다시 발을 담그지 않으리라 널 만나면 너를 잃고 그를 찾으면 이미 그는 없으니 십일월에 떠난 자 십일월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번뇌는 때로 황홀하여서 아주 가끔 꿈속에서 너를 만난다 상처로 온통 제 몸 가리고 서 있어도 속이 아픈 사람들의 따뜻한 웃음 오래 그리웠다 산을 오르면서 누군 영원을 보고 누구는 순간을 보지만 애써 기다리지 않아도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 사람이 평생을 쏟아부어도 이루지 못할 평화를 온몸으로 말하는 나무와 풀꽃같이 그리운 것이 많아도 병들지 않는 않는 무욕의 정신이여 그때 너는 말하리라 고통이라 이름 한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해곡 속 먼지보다 가볍고 속세의 안식보다 더한 통속 없으니 뻐..

스물여덜 어느날 / Djivan Gasparyan- Mother of Mine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냐고 찾아왔다얘기 말엽에 그가 물었다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요? 웃으며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줄었다순간 열정 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 하나가 처지는 것을 보았다허둥대며 그가 말했다조국해방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영광으로 생각 하라고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 하지 않는다십수년이 지나 요근래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내게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나는 저 들에 가입 되어 있다고저 바닷물결에 밀리고 있으며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이 푸르른 너무애 물들고 있으며저 바람에 선동 당하고 있다고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 있고거친 채인 ..

부드러운 감옥 / 이경임 / Club 8 - Stay by my side

부드러운 감옥-이경임     아침, 너울거리는 햇살들을 끌어당겨 감옥을 짓는다. 아니 둥지라고 할까 아무래도 좋다 냄새도 뼈도 없는, 눈물도 창문도 매달려 있지 않은 부드러운 감옥을 나는 뜨개질한다 나는높은 나무에 매달리는 정신의 모험이나 푸른 잎사귀를 찾아 먼 곳으로 몸이 허물도록 기어다니는 고행을 하지 않는다 때로 거리의 은행나무 가로수들을 바라본다 평소엔 잘 보이지 않던 잎새들의 춤이 바람이 불 때면 햇살 속에서 눈부시다 잎새들은 우우 일어서며 하늘 속으로 팔을 뻗는다 내가 밟아 보지 못한 땅의 모서리나 계곡의 풍경이 나를 밟고 걸어간다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걸어나가고 싶다    거리에 가로등이 켜진다 가로등은 따뜻한 새알 같다 건물 속에서 사람들이 새어나온다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가로등 쪽으로 걸어..

방을 깨다 - 장석남 / Sia - the church of whats happening now

방을 깨다 - 장석남   날이 맑다   어떤 맑음은   비참을 낳는다  나의 비참은  방을 깨놓고 그 참담을 바라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광경이, 무엇인가에 비유되려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몰려온 것이다   너무 많은 얼굴과 너무 많은 청춘과 너무 많은 정치와 너무 많은 거리가 폭우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밝게 밝게 나의 모습이, 속물근성이, 흙탕물이 맑은 골짜기를 쏟아져 나오듯     그러고도   나의 비참은 또 다른 지하 방을 수리하기 위해 벽을 부수고 썩은 바닥을 깨쳐 들추고 터진 하수도와   막창처럼 드러난 보일러 비닐 엑셀 선의 광경과 유래를 알 수 없는 얼룩들과 악취들이 아니고   해머를 잠시 놓고 앉은 아득한 순간 찾아왔던 것이다   그 참담이 한꺼번에 고요히 낡은 깨..

노선 / 천양희 / Sia - The Bully

형님은 자기 노선이 잇소? 독립문 지나다 아우가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자신에게 반문한다 희망은 있는 걸까 아직 그런게 남아 있다면 거기가 나의 노선이 될 텐데   아우는 자기 노선이 있나? 광하문 지나다 형이 묻는다 그는 대답 대신 형에게 반문 한다 희망은 있는 걸까요 아직 그런게 남아 있다면 거기가 너의 노선이 될텐데   가다 보면 길이 되는 것 그것이 희망이라면 그 희망이 우리의 노선이리 Sia - The Bully

노래 / 강정 / Alison Krauss & Union Station - Home On The Highways

숨을 뱉다 말고 오래 쉬다보면 몸 안의 푸른 공기가 보여요   가끔씩 죽음이 물컹하게 씹힐 때도 있어요   술 담배를 끊으려고 마세요   오염투성이 삶을 그대로 뱉으면 전깃줄과 대화할 수도 있어요   당신이 뜯어먹은 책들이 통째로 나무로 변해   한 호흡에 하늘까지 뻗어갈지도 몰라요   아, 사랑에 빠지셨다구요?   그렇다면 더더욱 살려고 하지 마세요   숨이 턱턱 막히고 괄약근이 딴딴해지는 건   당신의 사랑이 몸 안에서 늙은  기생충을 잡아먹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저 깃발처럼   바람 없이도 저 혼자 춤추는 무국적의 백기처럼, 그럼요 그저 쉬세요 즐거워 죽을 수 있도록

물푸레나무 / 박형권 / Aconcagua - Ojos Azules (중남미)

물푸레나무/ 박형권 저 나무, 물푸레나무안에 들어가 살림 차리면숟가락과 냄비를 들고 부름켜로 들어가방 한 칸 내고엽서만한 창문을 내고녹차 물을 끓이면지나가던 달빛이 창문에 흰 이마를 대고나물처럼 조물조물 버무린 살림을 엿보겠다나는 엎드려서 책을 읽고 있고겨울 들판에서 옮겨온 밤까치꽃 같은 여자가 뜨개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벽에 귀를 댄다물푸레나무에는 물이 많아서천장에서 똑똑 물이 떨어져그릇이란 그릇 죄다 받쳐놓으면실로폰 소리 나겠지겨울 내내 물 푸다가 봄이 오겠다여자하고 나하고 할 수 있는 일이란고작해야 서로 좋아하는 것나의 하초와 여자의 클리토리스가 파랗게 물이 들도록끙 끙 끙어떻게 어떻게 힘주다 보면나도 모르게 봄을 낳아서갓 낳은 알처럼 모락모락 김이 나는 세상이 찾아오겠다그때 창문을 열면?

바닥에서도 아름답게 / 곽재구/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가질 수 있지-김원중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날은 올 수 있을 까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그리워진 서로의 마음 위에    물먹은 풀꽃 한 송이    방싯 꽂아줄 수 있을까    칡꽃이 지는 섬진강 어디거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한강변 어디거나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모래알이 아름다워    뜨거워진 마음으로 이땅 위에    사랑의 입술을 찍을 날들은    햇살을 햇살이라고 말하며    희망을 희망이라고 속삭이며    마음의 정겨움도 무시로 나누며    다시 사랑의 언어로 서로의 가슴에 뜬    무지개 꽃무지를 볼 수 있을까    미쟁이 목수 배관공 약장수    간호원 선생님 회사원 박사 안내양    술꾼 의사 토끼 나팔꽃 지명수배자의 아내    창녀 포졸 대통령이 함께 뽀뽀를 하며    서로..

손까락 사이에 낀 아침 / Musa Dieng Kala - Kalamune

들길 너머 양지뜸에 움막 하나 짓고 똘똘한 삽살개 한 놈 데불고 싶다 혹 모르는 손 찾아와도 너는 짖지 말아라 이젠 헛된 목청을 아껴두어야지 뜰 앞의 복사꽃 바람에 흩날리고 불현듯, 묵은 서러움이 목구멍을 간질거릴 땐 이웃집 할머니 텁텁한 농주라도 받아마시자 아아, 취한 세월은 이미 자취도 없어 봄은 또 저 혼자 열렬히 타오르다 사위겠지만 한평생 부치지 못한 편지는 모두 술잔 속에 불사르고 저 꽃 그늘 속 나비떼들의 싱싱한 꿈도 보이는 그런 봄날의 울 밑에 누워보고 싶다 가끔 바람에 꽃잎 하나 찾아와 네 소식을 물으면 그냥, 이렇게 나처럼 살고 있다 하고. 바다가 보이는 허름한 스레트집안에서 나는 이 봄을 그렇게 죽여가고 있다.   어딘가 박혀 있을  습작 중에서.. Musa Dieng Kala - 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