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낙서도 감정노동이다

세번째 줄에서 떨어진 광대의 이야기4 (배경음악)Madredeus - Na Estrada de Santiago.. 외 6곡

ivre 2011. 9. 21. 02:44


 

길을 걷다 낙업도 아닌것이 낙엎인냥 폼을 잡고 있었다 마치 나좀 봐 달라는듯이. 내가 지금 너랑 이야기 할 시간이 없다 대신 렌즈에 담아가마 다시 너를 소생 시키는 날 우리 그 때 이야기 하자.


슬픔은 그리도 많은지, 목마름은 그리도 많은지, 진정 혼자의 시간이 무섭고 한번씩 나의 영혼이 전률하듯 처참히 소스라칠때가 있다. 언제나 우리를 돌보시며 함께 하신다는 성서의 신이 아니고 사람이 그래 줬으면 좋겠다. 니미럴.....

사람이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사랑 하며 내가 간망 하는 한 사람이 내 옆에 늘 있어 주고 산울림처럼 내 마음에 어김 없는 대답을 들려 줬으면 좋겠다. 하기야 이건 모두 사람 그 누구나가 가슴에 품어 절절히 갈구 하는 가장 보편적이며 기본 적인 욕구일것을 모른다 하지 않겠지만, 저마다에 있어 새삼 아프고 심각 하여 마치도 무류의 진실처럼 모든 비교를 초월해 통열히 불타는 무서운 염원이라 할 것이다.

어져면 평생을 지속하는 서러운 집념 이라고도 할 것이다. 인간의 통례라 할 이 보편적 욕구의 그 한 조각을 참으로 삭히지 못하여 실로 얼마나 한 사달림을 치루워 왔던가에 대해선 그 엄청난 질량을표현할 수 없다

살아오면서 스스로 좀 더 잘 알게된 나 자신이란, 어처구니 없도록 그 욕망이 범속하고 번뇌도 범속 하다는 그것이였다.
이 단조로운 생황 쾌도, 볌연한 일상의 삶, 그 태두리 안에서 나는 쌓아 올리고 무너뜨리고 일어 서고 넘어지는 한없는 되풀이로 마치 시지프스의 바위 처럼 나를 소모 하고 상처내고 마침내 기진해 버리고 만다.

이를테면 나는 모든 날에 일터 나간  큰놈이 아무 탈 없이 일찍 귀가해 주고(지금은 군에 가 있다) 작은놈 급식비 날짜 맞춰 내 주고 학교와 일터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저녁상을 차려주고 그것을 맛있게 먹어 주길 바랬던 것이고 기실 이 바램은 그 대부분이 보람없이 허물어 졌다 할 것이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다른 가정인들 흔히 이런 일이 생겨나고 있음을 모르지 않지만 나는 날마다 이 일 때문에도 새롭디 새롭게 상처를 입었었다.

내 감성의 살갖은 단지 몆시간에 그 상흔을 아물리고 거듭 몆번이라도 새로운 상처를 받아 드리기 위해 부지런히 예비 하는 것만 같았다.  똑같은 일 때문에 똑같은 아픔을 입어 오기 벌써 10여년이 되어 가는듯 싶다. 결국 나는 이 10여년 동안 철학을 등지고 또 체념을 거부 하는 사내, 무의미한 탄생에 손잡히어 한 줄기 새로운 빛을 붙잡아 드리지 못하는 사내. 천치와 같이 생활의 굴레를 만신에 뒤덮고 전혀 해탈이라곤 없는 사내인 것이 스스로 아연해버린 심정이다.

빌어먹을 이제 눈도 늙었나 부다 글에 그림자가 생기어 두개로 보이니 글을 쓰기가 여간 성가시지 않다. 그럼에도 안경을 새롭게 못마추고 있다.

어째거나 나의 내면 생활은 평범속의 방황이며 조갈이며 때때로 하잘것 없는 자학 이리라. 간혹 내가 나 나름으로는 절대로 더 참을 수가 없다는 비통한 감정으로 몇일간 집을 벗어 나려 여장을 꾸리더라도 애들의 슬픈 눈초리에 붙잡혀 맥 없이 짐을 풀거나 아니면 애들을 몽땅 앞세워 유치원의 집단 소풍 같은 집단여행으로 옮겨 버리고  후우..... 혹자는 이 글을 보며 이 분 여자구나 생각할 분도 있을것 같다. 허나 난 아빠 이며 건장한 사내이다.

내 아내를 사랑 했었다. 가정일에 관심이 없고 아이들에게 소흘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으나 그것 외에 실상 다른 과오나 섭섭함을 끼쳐준 일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그 전까지는 감히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우리는 아직도 더러더러 서로 낯설며 이를 좀 과장 한다면 이방인 같은 심정이 될 때도 드물지 아니하다.

도시 한 인간과 인간 사이가 온전히 융합 한다거나 완미하게 조화 되는 일이란 턱 없이도 어려워 좀체 그 전형을 구경 하는 일이 드물고 우리들 개개인은 진실로 유리 되길 잘하며 허적 속에 버려져 있는 수가 많기 때문에 몆번이고 다시 맞서보며 서로를 청해서 데려가기 위해 즐곧 간곡한 바램으로 마음을 덥게 하는 것인지 모르겟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의 안식처를 찾아 좌정 하는 일에 서툴고 매양 허술한 변방에서 꿈꾸듯 먼 불빛을 바라보는 마음씨 그쯤으로 서성이는성 싶다. 남을 받아 주는 수용에 인색하고 자기를 내어 마끼는 일에 주저 하면서 하나 같이 굶주려 기진해 있는듯 싶다.
더구나 나는 혼자 있는 시간 따위를 도저히 오래는 참지 못하며 건강을 상해 두러눕게 될 때라도 몸보다 마음이 먼저 비참해져 버려 실없이 아무도 몰래 울기도 많이 한다. 감정이 상습이며 엄청나게도 취약해 있는 나 자신을 어떻게 처리 하면 좋았을 것인가.

사랑의 고뇌중 그 첫번째가 스스로의 무게요 그 마지막 또한 스스로의 무게 그것일 것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삶에 백가지 고뇌가 따른다고 한들 어차피 그 으뜸의 것은 자기 자신으로 인한 무궁한 회의 그 고뇌이리라.

무엇보다 먼저 그 자신이 무섭고, 까다롭고 실로 뒤엉킨 실꾸리 처럼 수숩키가 어려워서 이 때문에 사람들은 소모되며,지치며, 절망해 버린다고 말하고 싶다.

나 역시도 내 멋대로 슬퍼져 버리고 누구의 탓이랄 수도 없는 스스로의 자막으로 묶여 숨막혀 버리고 마는 것이리라. 요즈음에 나는 한결 더 고달퍼서 목견디겠고  튼튼한 벽과 같은 커다란 가슴에 마음 느긋이 기대고만 싶다면 이 얼마나 몰염치랴.
확실한 지표를 갖고 물란한 의지에 불탈 수만 있다면... 다시는 이탈 하지 않을 사명의식,책임의식, 겁 없이 껴안을 수 있는 노무에의 정렬, 우정의 정렬,  그 위에 내 영혼에 평화를 맞는다면, 굵은 돌기둥 같이 줄기찬 힘을 같는다면, 빛을 같는가면 얼마나 좋을까.

일생의 사계
계절마다 의문과 곤혹이 생겨나고 뒤범벅으로 뜨거운 혼란이 일어 나면서 어째도 제각기의 답안을 써 내야만 인생의 한 절기를 지나갈 수 있음을 어져랴.

스스로 말해 듣기.
서두르지 말자, 비겁하지 말자, 쉽사리 얕보지 말고, 쉽사리 포기 하지도 말자, 열심히 생각 하고 열심히 살자. 인생은 숙제를 푸는 도장이다 동시에 죽도록 풀어 못다 프는 수가 많음이 진실로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