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신 세상
유리잔에 넘치는 불빛처럼
우리 빛나는 금빛 환상처럼
눈부신 세상 눈부신 세상 눈부신 세상
내가 태어나 사랑한 곳
거리마다 춤추는 유혹처럼
우리 숨가쁜 오늘 하루처럼
눈부신 세상 눈부신 세상 눈부신 세상
내가 태어나 사랑한 곳 그 곳이 나의 천국
눈 먼 행복과 벗겨진 꿈
눈물 없는 슬픔과 사랑 없는 열기만 가슴에 있네]
그곳이 나의 천국 눈 먼 행복과 벗겨진 꿈
눈물없는 슬픔과 사랑없는 열기만 가슴에 있네
눈물없는 슬픔과 사랑없는 열기만 가슴에 있네
언제부터인가 이 블러그에 올라 오는 계시글들은 죄다 노래 뿐이다. 뭘 얼마나 잘 부른다고 겁도 없이, 조금은 기고만장 하여 노래를 불러 계시하곤 한다. 그렇다고 누가 하나 댓글로 응원을 해 주는 것도 아니고 잘 들었다는 인삿말 한마디 써 놓는 이들이 있는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흔하디 흔한 댓글이 이 블러그에서는 아주 귀한 대접을 받는다. 아마도 이곳에 오는 방문객들은 게으름의 고수이거나,나만큼이나 손까락 걸음마를 시키지 않은 이들일지도.
언제부터인지 글 쓰기를 멈추고 이렇게 조금 하는 노래라고 지랄 염병을 하고 있다.
손까락 걸음마를 멈춘지가 언제인가.
하여 오늘은 손까락 걸음마를 조금 시켜 보려고 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그 옛날 덜컹 거리는 밤 기차에 대한 추억이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가차없이 꼰대 소릴 듣는다지만 꼰대 소리 듣는 것도 나름 괜찮다. 그들 역시도 이 꼰대 소릴 하면서도
내심은 부러울테니까.
그 옛날 기억도 가물 가물 하지만 청량리에서 비둘기 호를 타고 서부산까지 한번씩 다니곤 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
바깥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그래도 눈길은 창밖을 더듬고 있었다. 이따금 민가의 불빛이 옆으로 길게 금빛의 수실처럼 흐르다가 끊어지곤 했다.
그 검고 네모난 창문 안에 홀연히 사람 하나의 얼굴이 비치던 일은 어째서일까. 나의 아득한 과거 속에 가라 앉아 있던 그가 판유리 위에 유령처럼 드러내다니.
왠일일까, 마음속엔 갑작스런 소여가 일어 난다. 마치도 끔 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잠이 깬 후 실없이 그 기억을 되뇌이듯이 심중엔 작은 돌이 던져지고 자자한 수문들이 둥그랗게 주변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랬는데 묘하게도 지금 믄득 그 일이 생각난다. 그건 돌아 오는 행위를 연상시키며 또한 이디론가 바람처럼 떠나니고 싶은 우리들 자신의 우령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여겨진다.
잠재 의식 속에서 출렁이는 갖가지 빠도들. 곁으론 평온하나 속에서는 사람게 소용돌이치는 격량들 중에 회기의 열망인들 없다곤 못하리라. 하지만 이것을 받아 줄 따스한 품 안이 관연 있음인지 생각해 보자.
오늘의 세대에선 부재자나 이탈자를 위해 어떤 마련을 해 주고 있나. 맨 끝에 오고 있거나 아예 걷기를 포기해 버린 사람들에게도 그 몫의 좌석과 더운 음식을 남겨 두고 있는가.
추녀 끝엔 어슴부레한 불빛하나 내 걸어 두었는가.
지나간 시간들은 조만간 빛바래고 한 떼의 열정도 새월다라 퇴락하련마는 그러나 뒤처져 따라 오는 이와 먼 데서 돌아 오는 지친 사람을 위하여 수용의 문 하나 쯤은 열어 두어야지.
자식을 기다리는 어버이가 사철을 하루 같이 한길에 마음 쓰듯이,돌아올 가능성에 대비하는 한 가닥의 용납이 없지 못할 것이다. 사람에겐 언제나 영육의 배고픔이 따르며 하늘 띁 땅 끝까지 서성이는 방황에도 붙잡힌다.
이것을 채으려고 좌석을 벗어 나는가 하면 상처만 더한 채 그리운 옛 둥지를 찾아 들기도 한다.
와로운 방랑과 허무한 수고,
날개가 없으면서 한없이 날려고만 하는 모슨의 생리 등을 피차의 인간적 공감으로 품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도처에 번성 하는건 사람의 어리석음이요, 그 때문에 사람의 회오도 헤아릴 수가 없을만하다.
돌아온 탕자를 뜨거운 눈물로 껴안는 아버지의 얘기를 우린 익히 알고 있다. 새 옷을 입히고 손에는 가락지를 끼워 주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성대한 잔치를 배푼다. 죽었던 아들을 다시 만나니 이보다 더 한 경사가 없다고 이웃에게 말한다.
내가 그 아들이라면 얼마나 부끄럽고 그러면서 한없이 한없이 따스하랴. 우리도 이와 같이 남을 영접하면 남이 또한 이렇게 해 줄 것이다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공리적인 상환 의식 따위가 아닌, 진정한 사랑과 우정과 자체로써 돌아 오는 이를 위해 안식을 마련하자.
밤 기차의 네모난 검은 유리창 안에 퍼득 남겨 오던 그 사람이 언젠가 추녀 밑에 와서 나직이 문을 노크할지도 모를 일의 대비로 하나의 좌석을 마련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이 일이 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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