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도 감정노동이다

외로워 져야 보인다

ivre 2011. 10. 4. 17:22

많은 이들이 보고 느끼고 찍으려 떠나지만, 주어진 감흥을 반도 채 느끼지 못한다. 왜 그럴까. 외로워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로움의 절벽으로 나를 내몰아 보면, 마음 밑바닥의 깊은 감정을 끌어내 다른 사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수십 수백년간 주인이 수없이 바뀌면서 집 주인에 따라 겹겹이 두텁게 칠해지거나 순탄치 않았던 날씨 탓에 낡고 생채기 난 보잘것 없는 문을 드려다 보자 이전에 보던 문과는 다른 이야기를 내게 전해 줄것이다. 저 파도도 그렇다.




상처가 스민다는 것 / 강미정


서두를 것 없이 사흘 동안 비 내렸다

빗길 그 사이에 점자처럼 도드라져 있는

파릇한 상처를 밀어 올리며 당신 꽃 피었다

숲과 나무가 천천히 스미듯 땅과 비가 천천히 스미듯

젖는 일이란 제 속의 마디를 끊어내는 일이었다

제 속으로 새 마디를 하나 새겨 넣는 일이었다

당신이 내게 소리 없이 스미어왔던 것처럼

내게 스미어 내가 모르게 된 것처럼

천천히 스미기 직전의, 수만 떨림의 촉수를 뻗었던

누군가가 내 인생에도 있었음을 알겠다

가슴 속 상처가 스민 그 자리에서

길을 더디게 걷는 일처럼

소리도 없이 서로 스미려고

그 얼마나 많은 비 내리고 바람 불었는지

몇 날 비에 젖고 있는 창 밖의 풍경처럼

적조하고 단조로운 음절도 때론 사무친다는 것

어느 사랑이 비의 경전에 귀 기울이며

젖는 일에 저토록 몰두할 수 있단 말인가

창 밖의 풍경은 또 훌쩍 키가 자라고

마디진 길을 배회하던 기다림은 더 푸르러지려니

당신을 새겨 넣은 내 푸른 상처는

또 얼마나 오래도록 파닥이며 반짝이겠는가

빗물 다 스민 자리에서 나무는 또

푸른 물기 스민 잎을 햇빛 속에 가득 새겨 놓는다


'옛 생각에 빠져도 보고, 옛 시도 들추어 보게 되고..

빗소리에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듭니다. 

이 비가 그치면 어쩌나..

비라면 석달 열흘 내려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