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글/배용제

배용제 / 삼류 극장에서의 한때-꿈은 또 하나의 쓰레기 봉투이다 (배경음악 Danielle Licari - Et Maintenant)

ivre 2009. 1. 13. 00:31

밤새 고양이가 할퀴고 간 쓰레기 봉투 안,

내가 헝크러진 채 쏟아진다

몇 장의 고지서이거나 구겨진 낙서 조각으로

또는 삼키지 못한 음식물 찌꺼기가 되어

역겨운 냄새를 풀풀 날리고 있다

그것은 살이 뜯긴 앙상한 과거이거나

버려진 기억의 나,

 

그러한 나를 간혹 꿈속에서 만날 때가 있다

낯익은 형상들이 모퉁이마다 뒹굴고

일그러진 표정을 가진 기억에 꿈은

축축한 땀을 쏟으며 한없이 어두워진다

꿈이 되풀이될수록 더욱 많은 내가 들어찬다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곳으로부터

압착된 무수한 나는 천천히 썩어간다

꿈은 모두 악취로 가득하다

 

나는 연신 코를 막으며 삐져나온 것들을

봉투에 쓸어담아 입구를 단단히 동여맨다

묻혀야 할 흔적의 오수가 흘러나온다

날카로운 빛이 꿈의 벽을 할퀴며 지나간 아침,

얇은 꿈에 구멍이 나고 나는 문 앞에 돌아와 서 있다

 

곪아터진 뜨겁고 끈적한 진물이 주루룩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