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7 2

들꽂

주인 없어 좋아라바람을 만나면 바람의 꽃이 되고 비를 만나면 비의 꽃이 되어라  이름 없어 좋아라송이 송이 핍지 않고 무더기로 피어나 넓은 들녘에 지천으로 꽃이니우리들 마음은 마냥 들꽃 이로다 뉘 꽃이 나약하다 하였나 꺾어 보이라 하나를 꺾으면 둘 둘을 꺾으면 셋 셋을 꺽으면 들판이 일어나니 코끝을 간지르는 향기는 없어도 가슴을 파헤치는 광기는 있다  들이 좋아 들어서 사노니 내버려 두어라 꽃이라 아니 불린들 어떠랴 주인 없어 좋아라 이름 없어 좋아라

동전을 뒤집으며 / 김세기 /Club 8 - What Shall We Do Next

Club 8 - What Shall We Do Next주머니를 뒤지니 동전 나온다 백원을 뒤집으니 이순신장군 나오고 오십원을 뒤집으니 벼이삭 나온다 멀거니 줄 서서 동전을 뒤집으며 앞에 선 여자 궁둥이나 훔쳐보며 동전 밖에 없어 갈 곳은 없고 갈 곳 없어 아득하여라 조정에서는 이 좋은 날 무엇을 할까 신문에 난 연쇄살인사건과 어느 중소기업 사장의 자살소식을 보며 북녘의 동포들은 끼니를 거른다는데 동전밖에 없는 자신도 잊은 채 울먹이는 못난 나는 얼마나 작으냐 말 한마디 큰소리로 못하고 땡볕에 서서 다보탑을 뒤집으니 십원 나온다 주머니를 뒤집으니 먼지 나오고 먼지를 뒤집으면 뭐가 나올까 생각하며 무엇이든 뒤집기만 하면 다른 것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해서 일없이 동전만 뒤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