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낙서도 감정노동이다

순수의 평화

ivre 2016. 7. 26. 02:05

 

 

언제나 바쁘다는 의식 속에 잡혀 지낸다. 일한 것의 질량을 되돌아 보면 우습도록 보잘것 없는데요 감당 못 할 분망이 나를 지배 하며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몰아붙히곤 한다.

가슴속은 더 바쁘다. 마음에 파도 치는 물이랑이 기슭으로 밀려와 차례로 부서진다. 잠시 공중에 치솟고는 풀어져 종이처럼 얇개 해안에 드러 눕는 물결들. 나도 그렇게 누워 버리고 싶다. 두 팔을 길게 드리워 힘을 빼고 마치도 영원속에서처럼 오래 오래 눈감아 있다면 좋겠다.

모든 감관을 닦아 두고 오직 젹멸 가운데 머무르며 안식의 기름을 온몸에 발랐으면 싶다. 살갗을 통해 몸속의 오장육부에도, 그리고 영혼의 전역에까지골고루 향유를 입힌다면 좋으련만은.

사람의 육체는 결핍된 영향분을 청구 하도록 마련이고 이것이 병중으로 나타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사람의 정신도 그래야만 공평하리라 내 정신은 더우기나 결핍투성이라고 잘 알고 있다.

첫째로 윤활유가 모자란다. 건조하여 조율이라곤 엉망이다. 나는 따습고 축축하게 적셔지고 싶다. 깊히를 더하여 침잠의 완충지대를 가지고 싶다. 습관처럼 하는 사랑이 아닌 헤어지면 죽을만큼 아픈 사랑도 하고 싶으며, 소리도 없이 창공르로 날아 오를 그 비상을 원한다.

커피가 생각나서 원두 한잔 내렸다. 맛있구나 사랑이 이런 맛이라면 난 목숨이라도 걸 수 있을텐데. 제기랄..

하지만 나의 현실은 이러한 바람과도 단절의 벽을 치고 있지나 않은지. 내면의 궁핍,철문이 내리듯 하는 육중한 페쇄가 나를 위협하면서 따라오는게 아닌지.

자기로부터의 자유와 자기로부터의 평화가 없으면 사람의 명분은 결코 온전하지 못하지 않은가. 아니 살 수 있을까?

참수의 형틀 위에서도 의연할 수 있었던 도량과 유연함을 한사코 추구해 나가야만 한다. 불가에선 선연을 펴고 앉아 적멸에 몰입한다는데 그 때 과연 어떤 세계를 보게 되는지를 알고 싶다. 대낮에도 어둑한 법당 안에 향내음보다 더 길게 깔리는 고요는 불전의 어느 대목에서 풀게 될 것인지를 알고 싶다. 그곳에 모신 부처님의 모습에선 무아경의 아름다움이 자잘한 물살처럼 퍼져 나온다.

첫 새벽 눈을 뜨면서부터 사람의 내부는 소란하다. 밤새워 걸어온 사람처럼 이미 지쳐 있고, 더하여(바쁘다 바쁘다) 면서 돌아간다

시계안의 작은 톱니바퀴가 서로 물리면서 시간의 작은 단위를 헤이듯이 내 안의 감관들도 미세한 가동을 담당하면서 소모되어 간다

속되고 소인적인 요소들이 공연히 부산만 피운다고 여겨질 때 자의식의 바참은 극단에 이른다. 이런 일이 모두 어이없고 슬프다.

평화는 하늘의 것이라고 할 만큼 아득하다.

기우를 가져 보는게 남은 날의 소망이다.

진정한 화평을 이 때에야 깨닫게 될 것이기에.

오늘은 전화기 속에서 드려 오던 한 마디가 생각 나는 밤이다.

"요즘 누구랑 노세요"

"노는 사람 없는데?"

"낮설어서"

"왜?"

"아줌마 같아 졌어. 수다스러워"

"말도 촌빨 날리고"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