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낙서도 감정노동이다

5월에게 안부를 묻는다

ivre 2017. 5. 19. 23:00

 

얼마만의 안부인가

오월에게 안부를 묻는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일컫는 이 풍요로운 달에 그대들이 받은 축복과 기쁨도 가히 넘치는 것이길 바랍니다.

오늘 그 심정의 기후는 어떠들 하신지요.

백옥같이 (실은 백옥같지는 않았다) 빨아 넌 빨래들은 바람을 안고 햇빛 안에 너을 거리며 해 그림자는 뽀얗게 마른 땅 위에 망사를 덮었을 겁니다.

열어 젖힌 창문을 넘어오는 바람은 갖가지 꽃나무를 쓸어 와 터질듯한 꽃향기를 솨아솨아 뿌려주곤 했을라나.

오후쯤 지나서 몆가지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갔을 땐 물거픔 처럼 자잘한 땀방을이 머리 밑을 촉촉히 축여 주었으며 그대들은 흘려버린 무언가를 찾듯이

그 몆 번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거기에도 햇빛이 하나가득 널려 있었구요.

구름 넘어 또 구름. 아득한 날 꽃잎처럼 흘려 보내던 유년의 종이배가 큰 바다를 굽이 돌아 하늘 한 귀통이 조개빛 그림 옆에 작은 구름이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아, 꿈 꾸세요.

이렇듯이 청명한 계절에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밝고 새롭고 감미로운 도취에 잠겨 보세요.  가슴속에 접어 넣고 있던 새햐얀 날개를 펴 보세요.

창공 높히 날려 보내세요. 겨우내 덮어 두었던 소중한 이름들을 기억해 내고 가만가만 마음속으로만 불러보세요. 마치도 기도 구절처럼 간절하게........

오늘 내 얘기는 한 편의 동화에서 그 실마리를 풀어 보려고 합니다.

안데르센의 (돼지 치는 왕자) 라는 작품 입니다.

먼저 주제부터 말한다면 보석과 유리조각의 값의 차이를 동화 속의 공주가 알고 있었느냐 아니냐는 겁니다.

여기서 공주란 한갓 상징에 불과 하며 바로 우리들 자신의 진정한 것과 가식적인 것에 대하여 어느정도의 총명한 판단을 할 수 있겠는지를

스스로 살펴볼 성찰의 기회가 된다 하겠습니니다.

우리의 저울, 에누리 하나 없을 그 눈금은 글쎄 어디를 짚고 있겠는지요.

 

머나먼 한 왕자가 어여쁜 공주에게 결혼 신청을 했습니다. 그는 5년마다 꼭 한송이만 꽃을 피우며 어떤 고통이나 슬픔도 잊게 하는 기적의 장미와 온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멜로디를 그 조그마한 목청 속에 다 갖고 있는 신비의 새나이팅게일을 은으로 만든 아름다운 상자 안에 넣어 그녀에게 선물로 보냈습니다. 이를 받은 공주는

손뼉을 치면서 "이 안에서 귀여운 고양이 새끼가 나오게 해 주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은상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장미를 보고 그녀는 매우 실망을했으며 또 하나의 상자속에 들어 있던 나이팅게일도 그것이 장난감 오르골이 아니고 생명을 지닌 살아 있는 새라는 점에서 그녀를 낙담케 했습니다. 그때문에 왕자를 만나 주지도 않았습니다.

왕자는 얼굴에 숯검정을 칠하고 궁 안에 들어 가서 돼지 기르는 직책을 맞은 다음 작은 오두막에서 신기한 장난감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예술가 였습니다. 조그마한 항아리를 빚어 둘레엔 가지런한 방울을 달아 장식을 했으며 이 안에 물을 담고 꼻여서 김을 내면 나라 안의 모든 집에서 만드는 음식들을

척척 알아맞힐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다음날 이 소문을 듣게 된 공주는 항아리를 사려고 값을 물었더니 " 공주님의 키스 열 번" 이라는 난처한 대답이였습니다.

그러니 도저히 단념할 수가 없는 공주는 그대로 값을 치러 주고 항아리를 손에 넣었으며 밤낮없이 물을 끓여 남의 집 음식을 알아맞히면서 시녀들과 즐겁고 만족스런 나날을 보냈습니다.

몆일 후 왕자는 잼이있는 흔들이를 또 만들었는데, 이것은 흔들면 어떤 음악이라도 들을 수 있고 신나게 춤을 출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시녀를 보내어 그 값을 물었더니 "공주님의 키스 백 번"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결국 공주는 돼지 치는 사람과 백번의 키스를 함으로써 흔들이를 받게 되었는데 어찌나 그 시간이 오래 걸리던지 여든 여섯 번째의 키스에 이르러 임금님에게 들켜 둘은 나라 밖으로 내쫒기고 말았습니다.

"그때 아름다운 왕자나믜 결혼 신청을 받아들였으면 좋았을껄"

공주가 이렇게 혼잣말을 하자 왕자는 길가의 나무 그늘에 들어가서 얼굴에 숯검정을 지우고 훌륭한 왕자님의 차림으로 나타나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이제 와선 당신을 사랑할 마음이 조금도 생기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엿한 왕자를 맞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장미꽃과 나이팅게일의 귀한 가치를 이해 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우스꽝스런 장난감을 탐내어 돼지치는 사람에게 키스까지 했습니다. 지금 당신은 그러한 일들에 타당한 보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받았던 귀한 선물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한 송이가 아니고 해마디 수없이 피어 나는 장미, 그 종류에 있어서도 무려 4백종에 달한다는 다양한 품종이 봄에 꽃피기 시작하여 줄곧 초겨울까지 이어집니다.

아름답게 노래 하는 나이팅게일과 그 밖의 더 여럿의 새들 갖고도 있으나 별반 의식조차 없었다곤 못 하겠습니까.

동화속의 꽃과 새는 물론 상징적 의미를 가집니다. 생명의 상징, 진짜의 상징, 기쁨과 위안의 상징 등으로 말입니다. 헌데 이런 성질들에 비해 남의 집 음식을 알아 맞히는 따위의 어이없는 장난에 열중하는 모습이 우리와는 전혀 무관하겠씁니까. 공연한 호기심으로 남의 사정, 뜬 소문에 관심을 쏟거나 웅색한 시기심이나 과민한 오해에 빠져 허위적거린 일은 없었는지요.

"왕자가 양치기 소녀와 결혼 한다소 해서 안 될 일은 없다. 그러나 그 여자가 왕녀의 영혼을 못 가졌다고 하면 이야말로 낭패이다" 라는 말이 있을 수도 없습니다. 왕녀의 영혼이란 어느수준의 품성과 인격을 뜻하며 아우러 왕자라는 조건과의 조화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둘이 만나 서로가 저편 사람의 반이 되고자 할 때 우선 그 본질이 같아야 합니다. 같은 종류 그리고 동일한 값어치라야 만이 견고하고 항구적인 결속이 가능합니다.사람에겐 동일한 값어치임으로 하여 서로 끌어당기게 되는 신비한 인력이 있습니다. 한 인격은 그것과 동일한 또 하나의 인격을 만나고자 하며, 준령처럼 높히 솟은 고독은 이 역시 이와 맞먹는 높은 봉우리의 헐벗은 고독을 만남으로써만이 상화의 위안을 나눌 수가 있습니다. 거대한 뜻이나 사랑이나 증여나 신앙도 필연코 같은 값의 짝을 갈구해 마지 않습니다

이에 있어 나는 남녀의 만남이나 그 결함도 이와 상통하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첫 머리에 든 동화 또한 바로 이 관점에 따라 인용하게 된것입니다.

즉 왕자가 주고자 했고 실지로도 두었었던 장미와 나이팅게일은 공주가 갖고 싶었던 새끼 고양이나 장난갑 딸랑이와는 서로 어듯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왕자는 그 자신으 주고자 했음에 비해 주구에겐 일시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난감의 주인이 훨씬 더 구체적으며 실용성 있는 인물이였던 것입니다. 본질의 어긋남이란 이렇게도 무거운 비극 이지 싶습니다.

우리는 각자 무엇을 원합니까.

적어도 크레용이나 스케이트보드 보다는 갖기 힘들 걸 구하게 됨으로 해서 갈망도 격렿하고 그 의지도 항구 하며 자갈밭 질풍속을 맨발로 달려 가듯 아프고 가파른 형편속에 던져져 있게 됩니다.

어른이 원하는것, 특히 어른이 된 여성이 원하는 건 무엇입니까.

평생을 함께 갈 가장 좋은 동반자 아니겠습니까. 성숙한 이해와 성실한 공감의 든든한 땅입니다. 엄청난 큰 것을 죽을 듯싶은 목마름으로 추구할 뿐인 전형적이며 전생애에도 걸치는 여망의 몰입을 어찌 다 감당할 수 있겠는지요.

안데르센의 또 다른 동화에 아래와 같은게 있습니다.

 

식품 가게의 지붕 밑 다락바에 세 들어 있는 학생이 양초와 치즈를 사러 아래층 가게에 내려와 물건을 사 들고 나가던 참에 치즈를 싼 동이를 보고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 종이는 옛날 책에서 들었던 한 장이였고 이렇게 쓰이는게 너무도 안타까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이라면 얼마든지 있어요.  실은 어떤 할머니가 그 책과 교환하여 커피을 조금 얻어 갔읍죠 8실링만 주신다면 나머지를 전부드리지요. "

가겟집 아주머니의 말에 학생은 매우 기뻐하면서, "치즈 대신 그걸 가져가져가지요. 저는 촛불과 빵만 있으면 되니까요. 라도 말합니다. 그날 밤 촛불을 켜 놓고 늦도록 책을 읽은 학생의 방을 전부터 이 집 안에 살고 있던 난장이 요정이 열쇠 구멍으로 유심히 들여다 다 보았더니 책에서 큰 빛이 돋아나면서 나무 즐기처럼 되었다가 어느새 커다란 나무로 변해 학생의 머리 위에 가지를 펴고 있었습니다. 잎은 싱싱하고 열매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과 같았으며 더군다나 아름다운 음악까지 울리고 있었습니다. 다음날도 학생은 다락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걸 본 난장이 요정은  힘센 닺줄에라도  뜰어당겨지듯 단숨에 뛰어올라가 안을 들여다 보다가 너무나 감격하여 엉엉 울어 버렸습니다.

이 요정은 요트밀과 버더를 얻어먹는 잼미로 이 집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새 생각이 변하여 환한 빛을 내쏘는 한 권의 옛날 책을 여태껏 즐겨온 음식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이웃집에 불이 나서 사람들이 저마다 가장 아끼는  물건들을 챙겨들고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아주머니는 금귀걸이를, 그리고 하녀는 애써서  마련한 비단 숄을 찾아 들고 나갔는데, 요정이 다락방에 가 보니 학생은 창가에  서서 건넛집 지붕 위에 솟아오르는 불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틈에 슬쩍  책을 끼고 나와선 모자 속에 감추고 지붕위까지 오른 다음 거기서 더욱 높은 굴뚝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갔습니다. 이에겐 이 책이 무엇보다 귀한 보물이라고 굳게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가치의 유인은 강렬합니다.  그리고 더 좋은걸 찾게 되면 먼저 것에서 손을 가르고 일어섭니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더 좋은 것ㅇ리며 가장 좋은 것인지의 가치를 재는 척도가 있어야 합니다. 난장이 요정은 요트밀과 버터를 좋아 했고 이는 살아 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이 났을때 그는 책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책도 중요 합니다. 왜냐하면 이 역시 일종의 양식이니까요. 육체가 먹기를 원하듯이 우리의 정신과 영혼도 끊임없이 먹고자 합니다.

책은 이의 양식이며 따라서 사람의 모습과 생리를 이 이야기 안에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 자신을 찾고 있습니다. 내면적 자기, 진정한 자기를 평생동안 찾고 찾습니다. 아울러 또 하나의 자신이라고 할 무류의 반려자를 부단히 찾아 헤매는 것이고 이 일이이야말로 생앵의 대업이라 할 만큼 중대사임을 그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이점이 여성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한것 같습니다.

"사랑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고 둘이서 같은 곳을 보는 일" 이란 말은 어늗덧 사랑의 정설이 되어 지고 있지 않는가요. 동일한 가치관 위에 삶의 그 해석에 있어서도 한가지 사상에 그 기본을 두는 이들끼리 만나 함께 걸으며 나아가 운명의 일치에까지 참여할 그 여망을 다지고 또 다집니다.

그러므로 이 조화가 깨어지고 소망이 와해되는 곳에 아프고 참담한 좌절과 비극이 발생하고 맙니다.

진정한 짝은 선택을 거치지도 않으며 선택의 자리에 있어질수조차 없는 절대적 존재일것 입니다. 비롯함에 있어 나와 더불어 하나이던 그 절반을 어느 때  다시 만나 본래의 하나로 환원하는 것이라면 이는 여럿 속에서 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고 오로지 진정한 반인지 아닌지의 확인만이 끼어들것이겠기에. 말입니다. 그러나 이 논법은 지금 세태에서 너무나도 추상적인 연분의 미신이라고 할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또한 기실 꿈인지도 모릅니다. 먼젓 세상의 희미한 회상을 곱씹듯이 어슴프레히 그림자를 쫓는 그리도 덧없는 염원인지도 모릅니다.

남자와 여자의 꿈은 다르다지요.  특히나 여자의 꿈은 더우기 엣날의 여자들은 더욱 그러한듯 보입니다. 베틀에 앉아 무명과 비단을 짜 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들 한평생에 몆십 몆백필의 무명과 비단을 짜 낸 놀라운 작업량을 믿게 되었을때, 그녀들의 가슴속 찬란히 무지개 뻗치던 평생의 긴긴 꿈을 확신할 밖에 없었습니다. 꿈꾸고 기다리고 인내하며 다시 그리워한 그리도 아득한 여심듸 돌탑, 그것이 아니였다면 어찌 그만한 일을 지탱해 낼 수가 있었겠습니까.

단지 꿈꾼 데에만 그치지 않고 분명한 실현을 현싫 안에 얻어 누리는 경우도 있게 됩니다. 인생의 중년을 지나 오면서 문득 또 하나의 영혼이 지척에 숨쉬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사람의 인기척이 아니고는 결토 이럴 수가 없을 심히 눈물겨운 따스함을......

부르면 대답하는 그 훈훈한 음성.

안개속에서도 알아볼 설핏한 눈매.

어느땐 늙은 가로등에 기대어 밤의 강물을 바라보는 성숙한 침묵이면서 잠을 설친 한밤중엔 달빛처럼 머리맡을 지켜 서서 얋은 이불깃을 여며 주는 그 성실한 연민. 그건 가슴 속에 영원한 마지막 하나의 촛불이며 함밤의 기도에 이슬내리게 하는 진정한 수분이라 할 것입니다.

성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신은 결합되는 것  외엔 만드시지 않았다" 란 말이 아니더라도 돌아와 서린 두 손을 모으는 간절한 인간, 머리 위에 종소리 울리듯 인간이 듣는 그 절대의 음성.

여기가 우리의 천지요 우리의 힘이며 다시는 떠나지 않을 닺을 내리고 비로소 대륙 안에 첫발을 내딛는 획신의 시작 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은 역시 좋은 것이고 결단코 절망할 이유가 없다고 이 하나 긍정 앞에 천천히 머리를 끄덕 입니다.

지금은 오월 입니다.

천하에 넘치는 오월의 상쾌가 우리의 몸을 씻어 줄 청량한 물처럼 살결 가까이에 부풀어 넘치는 그 더욱 넘실 거립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즈음 당신의 형편이 그다지 편하지 못했더라도 최선을 다한데 비해 보답이 미흡했거나, 심지어는 월부로 장만한 냉장고 속에 몆일 새 부쩍 흔해진 풋과일조차 채워 넣지 못했다 한들 그다지 마음 쓸일이 아닙니다.

당신의 총명이 보석과 유리 구슬을 능히 식별할 수 있고 귀여운 새끼고양이나 잼이 있는 딸랑이쯤을 훨씬 능가 하는 생명의 꽃과 대자연의 메시지를 울리는 기쁨의 나이텡게일을 가슴 가득히 품어 안을 수만 있다면, 더하여 가장 멋진 영혼으로 채워지고 견고한 성년의 사랑을 품어 가꾼다면 철철 흐르는 초목빛 오월에 더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지금은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갓테어난 탄생의 모습뿐이곤 합니다.

우리 역시도 새로운 탄신을 오늘에 가록할 수가 있습니다.

날마다 태어나는 그 선선함을 비노니, 태초의 할배와 할미여 살아 있는 만물로 하여 거듭거듭 청결한 속살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