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에 글을 쓰는건지 모르겠다.
점점 더 글 쓰기가 게을러 지고 있다. 아니 좀더 솔찍하게 말하면 언어를 잃어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래선 안되는데
다시 글 걸음마를 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나 처럼 커피 한잔과 입에는 담배를 물고 있다. 오랜 습관인게지
꽃을 샘하는 봄 눈이 몇 차례 뿌리고 간 사이 벌써 여름이 와버렸다. 옷섭의 습기가 사뭇 그냥 이던 것을 여름 햇살을 쬐면 그 물기도 가녀린 수증기로
걷혀 가겠거니.
사람은 뭘 하고들 있나?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서 모든 이가 목소리를 합쳐 소리 지른다.
바르고 자유롭게 살자고 한다.
윤택하고 따습게 살자고 한다.
그야 인권의 발언이지.
겨우내 자기 땅의 역사를 묵상하던 이들이 지금 신선한 여름 새벽을 맞았다. 여름의 상명한 기운이 담향과 섞여 솜실 같이 풀어진다.
우유라거니 또는 또는 비누거품, 공기가 부드러워 못견디겠다.
그렇구나. 쓸쓸한 자연 곁에 내가 엎뎌 있었지.
아무리 퍼내도 삽시에 또 괴는 그 샘물, 무량한 상념을 소의 위장처럼 느리게 반추하고 있었지. 자연은 언제나 놀라움의 현장이다.
굉장히 놀란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는 놀래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놀라움에도 적쟎이 굶주려 왔구나.
그대는 누구인가?
진실로 내 앞에서 누구란 말인가.
나는 당신의 누구인가?
겨우내 내 시력이 건강했었나를 돌이켜 생각한다.
잃은 사람이나 새로 얻은 사람이 있었는가?
닫혀진 문앞에서 나직이 내가 노크했었나? 그랬는데 열리지 않았었나?
내 감정은 매우 가라앉았다 자꾸 밑바닥으로 처져 내려 생사의 결단보다도 더 가파롭게 쳐져 내려 정녕 바닥에까지 침잠한 것이다.
한 덩이의 석탄이다. 하나 속속들이 기름이 부글거리고, 불을 댕겨 붙이면 삽시에 펄덕이는 화염이 또 된다.
왜 괴로와하나? 무엇을?
그 흔하고 오랜 습성, 명제도 불투명한 번민은 자못 이성의 오욕이라하겠는 걸. 하면 그동안 무엇을 번민했었나를 말해 보라. 말해보라.
그리고 또한 사랑했었나?
아습한 옛날 , 이름도 저승인 그 전세에서 그대의 늑골이였다고 믿는 그 믿음으로 사랑 했었나?
그대 늑골의 하나에서 빚은 세 번 세상의 혈연, 저승과 이승의 지어미, 지아비라 여기며 진정 사랑 했었나?
이 때 사람의 생명은 말도 못 할 만큼 깊고 풍성해지는 충일, 진실로 범연챦은 시혜이지. 별외의 햇살 같은 썩 귀중한 조명.
그렇다. 먼저 세상의 명멸 하는 기억이 사나운 충동으로 화해 갑자기 현세의 폭풍으로 부는 일은 이 밖에도 많으리라.
조국만 해도 그렇다. 몇 겁 옛세상에서부터 우리의 조국은 오직 이땅이였으리라.겨례도 이 겨례요, 산천도 이 산천이였으리라. 모두가 그랬으리라.
사람들의 어여쁨.
우리는 경기장에 모인 군중을 안다. 천진하게 발을 구르는 그 순박한 연정, 우렁찬 환호. 메아리치는갈채와 일치한는 호흡.
단순한 승패에 거는 그 답백한 흥분, 사심없는 열중을. 군중도 이 군중이였으리라. 일진도 이대로의 일진이었겠지.한은의 그 정도도.
사람들의 자각은 현져이 높아 졌다 제 땅의 유래와 그 연면한 백박과 다가올 날의 형세마저.슬기롭게 내다본다. 앓는 이의 손을 잡고 신중히 판정을
가다듬는 진맥. 공들여 심고, 쉼 없이 돌보고, 오랜 기다림 끝에 추수해 나아간다. 생산을 탐내고 협동을 다짐한다.
이들이 현지는 매양 진실하다. 기름때에 절은 작업복 호주머니 속에서 도기처럼 단단하고 윤기나는 과실을 꺼내 주는 아버지. 운전수의 아들이 대학에서 우등을 하고, 역부의 딸이 마음씨 상량한 여교사가 된다. 대단챦은 주간지도 여럿이 나누어 읽고, 새 달력엔 미리 자식들의 생일을 표시해 둔다.
봄철 하루의 동물원 구경이 일년 내내 동심의 무지개로 서고, 쇼윈도우에서 외국의 큰 인형 때문에 어느 소녀는 잠을 설치기도 한다.
사람들의 어여쁨을 살펴 보아라. 교회당 속의 그네들, 진료서, 시장, 야행열차 속의 그네들. 국군 묘지의 그네들. 저들의 진실을 살펴 보아라. 노고에
갈라진 손등의 그 맨살에 잦아든 염원, 소금 비비던 먼 세월을 돌이켜도 보이라. 방울방울의 눈물로.
이성의 조심스러원 개화. 그 속의 말, 속의 포부, 속의 회상까지, 에절을 갖추어 깊히 살펴 보아라.
영혼에 대해 정을 투자 하는 미거. 거리낌없이 배푸는 사랑과 최다수의 행복을 근본에 놓고 보는 데모크라시의 아름다운 원리, 그 생동하는 확산력.
민족의 고지는 창창한 하늘 아래 눈부신 백령이다. 군중들을 위해 축원하라. 유구한 혈연을 위해 경건히 손을 모아라. 일월성신에게 모두 빌어야 한다.
진심은 그 지향이 무엇이건 비상히 아름답다. 그건 단지 한 부스러기로서도 절대의 밀도를 가지는 것이다. 하나의 종교처럼 둘레에 숭앙을 모은다 해도 과한게 아니다.
진실을 키우는 이들, 말은 없이, 한갖 조용한 미소, 그 하나를 주어라. 충실하며 속이 실한 단합은 얼마나 대견한가, 이것이야말로 확실하고도 풍성할수록 좋은 것이다.
간혹은 아직 생명의 애련을 모르는 이도 있다. 상실의 허전함을 한 번도 배운적 없는 그런 사람. 그의 냉연한 뜻을 외롭게 삭이며, 종내 추위를 못 이겨 제 동굴로 돌아간 이웃도 있었을지 모른다. 말없이 속으로만 서롭고 겸허한 회포를 키우며, 가는 목아지 더 휘이도록 기다렸다 간 여인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결별의 눈길을, 철늦은 설지대를 찾아 간곡히 쏫아 부었을것도 같다. 어딘가, 이 나라의 북녁은 아직 얼음에 둘러 싸안 겨울의 성이였으라라. 거기서 눈물을 쏟아 내고 그녀는 돌아 갔을지고 모른다.
그렇지.
삶의 허실과 어리석음에조차도 얼마간의 어여쁨이 꼭 깃든다고 말하마. 허행의 길가에도 방초는 돋아난다. 그 풀잎, 바람을 만나면 기쁜 어린이처럼 우쭐거리고 여름 햇살은 절편한 향유로 쏟아 부으리라.
어린이들이 사랑스러움.
한 장의 도화지에 터져 나도록 팽창한 천지를 담아 넣는, 여념 없는 그림 공부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하다.
달리는 어린이, 인형을 업고 우중에 얼마를 기다리는 어린이, 눈물자국이 남은 채 잠든 어린이, 싸우는 어린이, 소풍날을 기다리는 어린이, 때때옷을 입고 단풍속에서 즐을 짓고 나오는 화상 속의 그 즐거운 대열....
나의 유년기는 암울한 그림 뿐인데. 신열애 들떠 앓아 누었을땐 곧잘 천장의 꽃무늬가 수실타래보다도 더 현란한 꽃뱀으로 풀어져 내리 쏟았지.
태초의 할배와 할미는 분명 하늘에 계신데 왜 머리를 숙이고 기도를 하는 갠지, 끝내 그 까닭이 어려워서 번민했던 기억도 실없이 분명하다. 니미럴.
어린시절 어느날 곡마단 구경에 따라 갔었다. 백마를 타고 불로 둘러싸인 원형아치를 맵시도 어여쁘게 빠져 나가던 소녀들, 한눈에 그만 열애 하고 말았었다. 감격하고 동경하고 오매에도 못잊게 되어, 두고두고 그림속에 담아보곤 했었다. 자주 눈이 화끈해 지던 유년기 그리움의 회상.
어린 때 배운 불망의 한 감정은 그 후 즐곧 내 손을 잡았었지. 부산히 젖혀져 간 숱한 일력들의 그 어느 때에도, 가슴을 쑤시는 하등이 불망이 있어 왔었음을. 그 연약한 상정은 내 정념의 한 가닥 금선, 시시로 울려 가락 긴 여운을 남겼었다.
그건 가로수라도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내 지내온 길머리에 길게 늘어선........
뽀얀 물안개 속에 유백의 불빛으로 켜 있는 꿈의 등대들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줄을 이어 정박하고 있는 항구의 범선들일지도 모른다.
해목은 악보의 옛날의 악곡이거나, 아습히 살어져 간 옛 친구의 명단일것이다.
지금은 여름. 여름 햇살 질퍽한 뜰에, 겨울을 이긴 나무들의 그림자가 눅눅하다. 이제 멀쟎아 가장 선명한 초록이 그 위에 초록이 그 위에 점점이 물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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