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결정해야 한다
날마다 뭣인가에 대해 결정하며 심지어 한번 정해버린 일도 거듭되풀이해 마음안에 이를 세기고 몆 번이라도 새로운 일과 같이 이를 다짐하는 수가 있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못하는 일은 자기의 출생과 마침내의 죽음 뿐이다, 이 일에 대해서는 결코 우리들자신 이것을 선태, 취사, 또는 책거하지 못한다. 이것마는 참 어쪔
도리가 없기에 참으로 숙명의 돌문이라 부를만도 하리라.
시간이 멈춰서는 이른 결코 없겠는데 있다면 죽음이 와버린 오직 그 때 뿐이겠는데, 지금 나의 시간은 정지된 시계추처럼 한 점에 정착해 있는것만 같다
지금은 가을이 한창일때
하늘 먼 데서부터 새털 같은 눈발은 나브끼며 먼 곳에서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밤의 수레는 막바지를 넘었고 동트는 첫 새벽이 멀잖아 우리창에 무수히 볼을 비빌 것이다.
해마다의 시월 문득 나의 시월은 감저이 하나 가득 가슴 안에 부풀어 오른다. 잔인하리 만치 무덥던 여름도 소리없이 문을 내리고 집앞 감나무 잎이 하나둘 빨갛게 홍엽지어 마당에 떨어지면 나의 가을의 감정은 굵은 이랑을 지어 한꺼번에 다 와버리곤 했었음을.... 지체없이 불면의 한 철이 오고 심히 작은 자극도 질탕한 울음을 불러낼 수 있게 되며 기실 미칠 듯이 감정의 균형을 잃고 나는 비참해져 버리길 영락 없이 했다.
사람을 쫒아 가는 심정. 사람을 불러와 내 마음 속 싶숙이 들여 앉칠 불기피의 욕구가, 이 또한 앞서 말한 그 통속적 욕망이 나를 들볶아 무작정 뜨거운 뜨거운 혼란 속에 더져 놓곤 했었다.
오히려 첫 가을 그 한 고비를 넘긴 참 가을다운 가을에 와선 이미 평형을 되찾아 오히려 지나친 침체에 빠져버리게도 되는 것을...
내게 있어 다른 예지가 전혀 없고 이러한 계절의 예감 하나 해마디 아프고 어지러운 자욱을 님겨오고 있거니와 철 아닌 요새 그리고 이 밤에 불시의 화인처럼 왜 나에게 뜨거운 설렘을 불러내게 하는 겔가. 더구나 이리 억누르는 피곤 속에서 말이다.
나는 왜 언제나 굶지리는 심정일까.
도대체 나는 무엇을 탐내며 무엇 때문에 노상 마음이 흡족치를 못하는 것일까 나를 부럽게 하는 것 나를 못견디게 매료해 가는 것 나를 자꾸자꾸 끌어 당기는 것 한사코 붙잡아 들이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사람일까, 사람 중에도 그 누구라도 이름이 있을터인데 그 이름은 무엇일까, 아니면 종교일까, 예술일까. 하잘것 없는 아니 하잘것 없다고들 하는 애욕일까, 몰욕, 명예욕, 등속일까
잠도 안오고 머릿속은 닦인 유리알 같이 투명한 듯만 싶다.
유리 속을 드려다 보자. 무엇이 있나를 보자. 없으면 없다는 사실 그것이라도 보자, 이 아닌 밤중에 마치도 갑작스런 광끼처럼 나는 돌연히 글이 비끄러워 진다. 무엇 때문일까. 무디디 무디어 이적지 땅을 기던 내 글이 별안간 물이 불어난 연못의 붕어떼처럼 갑자기 숨결조차 가빠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상의 무의미한 흥분? 혼란들의 포만?
아니면 둔탁한 야기가 일시에 폭팔하는 것일까? 지구가 괭장히 큰 소리를 내며 회전한다는 것이고 다만 그 음향이 우리의 청각적 한계를 넘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문득 생각해 본다. 무엇으로 인한 연상이 이리 엉뚱하게 지구의 기억을 불러냈는지.
십자가에 올라 못 밖혀 죽음으로서만 그 진실이 밝혀졌던 그리스도는 어떠했을까? 엄청나게 가혹하던 외마디 명령을 쫒아 그는 세계의 끝까지 갔던 것이지만 어치피 그건 최상. 또 최미의 경악이며 바로 영원히 유가 없을 정신사의 정점 그것이었다.
하나의 장려한 정신을 바라보게 될 때마다 나에게는 기실 전률이 오곤 했음을.... 그것은 처참한 충격이요 그 외포 때문에 나는 곧잘 비참의 밑바지로 굴러 떨어진다.
다다를 수 없는 높이. 바라볼 수도 없는 빛. 그것은 차라리 아득한 공포라고 말해도 좋았었다. 하지만 이건 위대함을 선망하는 것과는 다르다. 적어도 내게 있어선 위대하기 위해 다급하거나 초조할 필요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어왔던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목적 그 자체가 적어도 위대에의 목적 그런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혹 어쪌 수도 없이 위대해 버리고 만 사람들에게서조차 그 위대성은 부수적인 경과이었을 뿐 결코 처음부터 어느 목적이 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 무리의 위대한 사람들이 나에게 세찬 경외를 준다고 할 때 그 까닭은 저들의 결과 때문이 아니고 실로 그들의 시작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사실에 있어 내 안에선 아직 아무도 시자글 하지 목하고 있으며 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 어째도 무언가를 시작한 상황으로 어서 옮겨 놓이고 싶은 것이다.
비록 나 나름으로는 시작했던 일들도 많았건만 내가 멀잖아 다시 그것을 헐아버리었으며 쌓고 헐고 쌓고 또 허는 사이 결국은 아무도 아무도 시작하지 못한거나 다를 바 없이 되어버렸기에 말이다. 헐지 안하도 되는 오직 한 개의 첫 초석을 찾기 위해 나는 다시 채석장으로 가야 한다고 다짐한다. 고요히 혼자 머리를 끄덕인다.
사람의 삶은 각기 누구에겐가에 바치는 대답과 같은 것일까.
사람의 삶은 각기 어딘엔가에 몸을 던지는 도여와 같은 것일까.
사람의 삶은 가지런히 열을 지어 제각기 열심히 뛰어 가는 그런 일일까.
그리고 죽음이란 한 번 더 되풀이해 새로 뛰어 보는 그런 일일까. 혹은 그 중간쯤의 막막한 어둠일 뿐일는지.
나는 지금 철학에 취하는 그런 태도를 따라 가려 함이 아니고 논리에서 능하고 싶지도 아니하다.
구도의 모색속에 있다는 자부심이 내 마음에 있을 까닭도 없고 춥다거나 외롭다거나 하여 자칫 과장된 비극심리에 취해 있어도 안될 것을 잘 알고 있다.
동시에 나는 공허 또는 태타에 빠져 있지도 말아야 하며 너무 어렵게 따지지 말며 지나치게 어리석거나 흐분하거나 침체하지도 않으며 쫒기는 심정 혹시는 쫒아가는 감정도 아닌 채 이리 자율 하나 정신, 평형 안의 지성으로 있고 싶을 뿐이다.
도시 나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는데 지금 하나의 하나의 존재인 채 있는 것이다. 어느 때 죽어 가는 시간과 죽은 다음의 시간에도 있을 것이언만 지금은 살고 있고
원고지도 아닌 모니터 앞에 앉아 끄저기지도 못하고 두드리고 있다, 어설픈 생각들의 어수선한 서탁을 쓸어 보며 있다.
한번씩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다시 손을 풀고 글을 잇는다.
막막한 바다위에 한 잎사귀 연약한 가랑잎을 띄우고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진실로 생각컨대 인간의 질량은 거기서 우러나는 애환이나 애증에 그 값어치가 매였다기보다는 그러한 여러 가지를 어떠한 양식으로 끄집어내어 그 다음 어떻게 그것을 다시 귀납시키느냐에 대해 이를 주관하는 저 밑바지의 사념과 이에 따라 오는 고뇌 또 염원의 격렬함 속에서 계량해야 할것 같다.
비슷하면서 때때로 판이하고 ..... 한 쪽이 부를 때 다른 한쪽은 잠들어 있기도 하면서 그리고 기다릴 때 오지 않거나 보내버린 다음 남아 애태우는 것. 존재하는 것끼리 서로 나누는 것 주고 받고 그러다 그 소유 때문에 소유의 모순이나 불균형 때문에 거듭 고민하는 것. 우는 것.이런 일이 얼마나들 측은한가.
겨울 산의 바위 위에 까맣게 말라 붙은 이끼가 목마른 줄도 모르면서 무한정 목말라 하듯이 사람의 모습도 이와 같이 목말라 보임은 한갖 환각일까.
실상 비는 많지 않은데 언제나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겨울 산 속의 목마른 이끼들. 이 이끼들 같은 사람들.
시계를 본다.
거울을 본다.
검은 창 밖의 가을 감나무를 다시 본다.
먼 산줄기 그 너메 흐르고 있을 미지의 강물, 그 늠실거리는 검푸른 물굽이를 마음 속에 펼쳐 본다
관념의 면포를 다시 빨고 풋풋한 나무에 걸어 던념히 말려야 할 것이라고 마음해도 본다.
감각은 졸음을 타고 마음은 포근한 이불처럼 그걸 덮어 주려 허거니....
나태와 방심. 하는 일 없이 흘러 내리는 무심 중의 시간이 쌓이고 쌓이어 내 안에서 하나의 사구를 이루어 놓고 있다. 시간은 은소나기, 시간의 은모래.
책장을 덮듯이 후줄근한 사념의 젖은 책갈피를 나는 덮고 싶다.
어쪄면 아무것도 씌여 있지 않은 빈 책 속을 이적지 뒤져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얘기에 나의 하룻밤을 묻어 버렸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나는 관념에서 욕심을 부릴 심산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대로 좋다고 생각한다.
정연한 이론이나 훤하게 잘생긴 관념에 대해 나의 관심이 끌려간 일이란 매우 드물었으며 그때문에 지금껏 그런 것에 나는 생소해 오고 있다.
내가 마음 써온 일이란 실로 어처구니도 없을만치살고 싶으냐. 아니면 사랑하느냐 아니냐 등속의 뜨거운 뒤범벅이요 거기서 끄집어 내는 일년의 쉼 없는 질문이였다고 할수가 있다.
무수히 되풀이 하는 이 단순한 질문에 또 그 응답에 나는 거의 닳아버리고 줄곧 소모 되면서 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면 누구를 그토록 사랑 했는지.
허구헌 날 목이 마르며 길을 걸으면서조차 그리움을 씹던 그 긴긴 실오리 같은 내 성정의 오랜 습관은 누구로 해 길러진 것이었을까
이 나른한 감관.
바슥바슥 적멸의 둘마루를 기어가는 몆 오라기의 지극히 습한 바람. 이쪄면 내 영혼 속에는 이런 바람만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지며 후딱 무서워진다.
논시울 속에 피어 오르는 섬세한 핏발 같은 연한 졸음기.
갑자기 붓을 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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