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 영혼을 연다.
이는 내 마지막 영역이다.
우리는 멀리 왔다. 얼어 붙은 강 위에 떨어 지는 백설을 바리 보며 나는 이 생각을 했다. 우리는 멀리 왔고 그리고 앞으로 더욱 땅끝과 하늘끝이 맞붙은 그곳까지가련다고.
사랑이란 참 어림 없는 결단.
그것이 얼마나 아득한 도정인가를 지금에야 알겠구나.이루 잴 수 없는 내면의 충일과 감춰진 손의 무한량한 도여가 아니면 갈 수없는 길인것 같다.
단순한 열정이기 보다 단순한 기원이여야 하며, 성급한 서약이기 보다 맹세를 늦추는 신중한 생각, 겸양을 앞세우는 명백한 결단 이여야 한다. 그건 감미로운 도취가 아니고 끝임없는 현실의 가지끝에 맺히는 겨우 열마간의 담백한 유열일 뿐이다. 많이 바라면 그만큼 낙망을 더하게 되고 절재속에 조금만 바람을 드러내면 매번 그 수급이 신선하고 흡족하리라. 이에 대해 경고 하는 좋은 말이 있다. "사랑은, 저편으로부터 아무것도 기대 하지 않았던 영혼의 경이에서 시작 되고 모든 것을 탐내게 되는 자아의 실망에서 문이닫힌다" 고.
그러나 사랑 하는 이에 대해 바람을 견제하는 일이 그리 쉬운가. 시시로 주고 쉴세없이 바라게도 되는 그 격정을 알맞게 조절 하는 일이란 예사의 지혜가 아닐 것 같다. 어쪄면 훨씬 풍성한 지혜를 맞고 있는 자만이 가능한 일이리라. 덕성과 관용의 선수들만이.
얼어붙은 폭포를 본다. 옥빛의 모시가 빳빳이 얼어 가파른 바위에 입혀진 광경이다. 수정판자 같기도 하고 첫 봄의 햇살이 몸을 풀어 주면 알알이 구슬 같은 물방울로 우쭐우쭐 흘러내릴 테지.
덩어리로 굽이치는 물의 분류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당신이 합께 이 설경을 본다면 좋았을 것을. 눈 위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광막한 벌판 한가운데 당신과 함께 있고 싶었다. 찡한 대기와 안개처럼 서려 나오는 산 정기가 당신의 살결을 더욱 씻어내고 보이지 않는 두팔로 보듬어 줄 것이다. 머리 위에 머무는 동천의 무변함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유연하게 해주랴마는.
말은 띄엄띄엄 조금만 나눈들 그 뜻을 썩 잘 전해지고 깊이 스며들리라. 아니지. 말은 전혀 없다고 한들 그 때문에 미흡이 생겨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실 사람 사이의 공감이 생기는 일이란 설명이 능한 어느 말 때문이 아니겠기에.
때때로 사람은 오히려 침묵을 통해 동일한 사념과 한 가지 바람의 그 일치를 얻게 된다. 그것은 말하지 않는 말, 말로써 나타내기엔 노무나 말의 한계를 넘어서는 말이므로 해서이다.
"진정한 충실은 한 번 태어난 이를 수없이 소생시키는 일이다" 이 말은 어느 책에선가 읽은듯도 하다. 사랑 하는 이를 거듭 몇번이러도 소생시키며 활력에 넘치게 하는 일이 사랑의 첫번쨰 의의요 의무이다. 자기를 다 주고 쉬임 없는 관심으로 돌본다고 해서만 사랑의 성취를 금시 얻는 건 아니다. 가장 근본적인 충실은 근본적인 생명을 진정히 찾아 주고 이를 도와 가꾸는 총명이며 그 성의 있는 지속, 통털어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다. 또 이것이 전후 일관되어 있어야 한다. 사랑의 진실은 더 많이 그 오뇌에서 자라난다. 수없이 엎으러지는 좌절의 자갈밭에서 얼마만큼의 열망으로 고뇌를 이기고 일어서는가의 그 준엄한 의지와 극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멀리 왔다.
우리는 과연 멀리 왔을까.
반은 긍정이요 반은 부정이다. 이에 대해 당신의 말씀이 듣고 싶다.
겨울 강물은 얼어서 한 덩이가 되었다 눈이 떡거루처럼 강위에 떨어 진다.
아무소리도 없다.
이 침묵의 심연.
무언가 몸을 떨게 하는게 있다. 어두운 전율이 아니고 한편 들뜬 쾌락 같은 흥분도 아니다.
한없이 내리 눌리면서, 어둑하게 솟구쳐 오르고 싶은 한 덩이의 감정이 피 묻은 주먹처럼 생생히 치받는다. 그러나 고요하게, 땅 속에서 일어 나는 일처럼 아무 소리도 없다.
아아, 정녕 당신의 외로움으 나에게 열어 주렴. 당신의 영혼을. 당신은 더 많이 고독을 알고 더욱 목마름에 눈 떠야 한다.
사람이 얼마나 철저하게 혼자인가를 그래서 벗을 찾고 신을 부르는 열망에 일어서야 한다.
처음부터 복습하는 교과서처럼 우리도 삶의 진실의 그 첫대목에서 시작 하여 새로이 배우자.
당신의 가슴을 더 열어라.
나직한 맥동, 생명이 울리는 적막한 음향을 듣자. 나하고 함께 듣자.
사랑 하는 친구여,
몇 날 밤을 당신 생각만 했다. 몇 달 몇 해, 나는 당신께 열중하며 에가지 왔다. 겨울은 사람을 더 깊히 품어 준다. 더 끌어 당기지 않으면 사람도 계절도 참을 수가 없어서. 당신의 추위를 나에게 열어주렴. 당신의 추위를, 그래서 그 추위 속에서 우리의 포용을 다시금 거쳐 나왔으면 한다. 몇 날 몇 밤을 잠자지 않는 마술사 처럼 깊은 겨울의 여러 날 밤을 당신과 함께 나도 깨어 있고 싶다.
"사랑에는 무게의 부담이 없어야 한다. 나의 나뭇가지가 부러질때는 당신이 너무 기대어 온 그 탓이 아니고 당신이 나를 버렸기 때문이다"
당신의 무게를 나에게 나눠 주렴. 그건 당신이 더욱 나에게 의탁해 오는 그 일로써 이루어진다. 나에게 기대고 나에게 맡겨주고 내 안에서 휴식을 누려 준다면 그 위에 무엇을 더 바라랴. 나의 중량이 더하도록, 무게를 견디는 나의 힘이 더욱 커지도록, 그래서 끝내 우리는 가지도 휘어 굽어지는 청과의 충일을 갖자.
당신의 의탁, 당신의 신망은 내 안에서 살이 되고 피가 될 것이다. 그것도 매우 풍요하여 언제꺼지라도 불후의 성질인 그러한 살과 피가 될 것이다.
한없이 당신을 품어 데려오고 싶다.
이루 말 할 수도 없는 나의 열망이란 바로 이것, 요약 하면 이렇게 된다. 허나 다른 말로, 한없이 나를 내어 주고 싶다는 그 말 그 뜻과도 전혀 동의의 것이다. 어느 쪽으로 말하건 우리가 함께 있어야 하겠다는 그 바람에 귀착 하는것이니까. 이별의 차가운 바람으로 잠 깨는 일이 없는 느긋한 중족과 안도의 긴 밤을 당신을 위해 마련 하리라.
가난한 소유도 풍성한 소유도 내게 있어선 오직 당신이 이를 자유롭게 재량한다.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일의 그 모든 영역을 관할 하는 비의와 비법ㅂ을오직 혼자 가지는 사람임을 내 어이 부인하라.
오늘 나는 당신을 청해 온다.
그 무엇도 거들 수 없는 확신으로, 더는 들어 갈 수 없는 깊은 내전에까지 당신을 모셔 드린다. 당신은 나의 행복한 포로가 되어 줄 수가 있는가? 아니 당신은 나의 마음 흡족한 빈객이 되어 줄 수 있는가? 당신의 어느 실오라기 하나라도 나와 무연 할 수는 없다. 하물며 모발 하나 하나, 간결히 헤어도 보고 싶은 이 마음을 어찌 다 감당 하리.
사랑하는 친구여.
순수의 싸락눈, 순수의 싸락비 운명의 싸락눈, 이를 모아 반죽 하면 그대가 된다. 네 생명 깊고 싶은 계곡에 태초의 할배와 할미가 찍어 주신 축복의 날인은 그게 바로 그대와의 만남이였다. 겨울에 태어나는 첫 봄의 환희가 내게 있어선 곳 당신인 것을.
우리의 만남을 감사 드리며, 우리의 외로움을 정결하게 가꾸는 이 손시린 영광.
내 말을 더 가라 앉혀야 할 것같다. 다만 말이, 지나치게 화사한 수식에 흐르게 될 일을 나는 경계한다.
미문은 때에 따라 글의 타락이 된다. 사람의 진실이란, 미문에 담게에만 합당하도록 생겨 있지 않을 뿐더러 내용이 허할 때 지칫 미문으로 덧입히게도 되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인들 더라는 마음에 담아두고 더라는 바람에 날려 보내며 그 일부만을 전하리라. 그리고 이 방법이 좋음을 결국 안게 된다.
세월은 더욱 싸에게 될것이다. 행여 이 위에 더는 만나는 일이 없이 내가 죽어진다 해도 아무 유한이 없을것 같다. 당신의 배념이 적었다거나 하는 그런 한탄은 더욱 있을 수 없다. 실상 당신은 나에게 흡족히 주었으며 또 고귀한걸 주었었다. 내 어설픈 사유의 틈서리에마다 당신은 갖은 양상의 촉매가 되어 주고 때때로는 분수에도 넘치는 영감의 불은 내 안에 당겨 불붙었었다. 갖가지 애환과 모든 염원 가운데 나는 항시 당신의 모습을 보았으며 당신의 이름을 주문이듯 언제나 내 입술에 흘리었었다.
그 나머지, 마저 못하는 내 걸망은 모두가 내 스스로의 탓이요, 내가 감당해 갈 삶의 과제인 것을.
간혹 글을 쓰다 밤을 밝히게나 되면 아침엔 죽은듯이 지치고 한없는 배고픔처럼 자신의 손을 물어 뜯는 그 전대의 고적감. 유리창엔 눈물이 맺혀 글썽이듯, 밤이슬이 몆오라기 흘러내리고 조간신문은 어느집 마당 한귀퉁에 눅눅히 습기를 머금고 내던져저 있다. 이럴 때 누가 있어 따습게 손을 잡아 주었으면 싶다.
절망의 유인은 왜 그리도 많단 말이냐.
나는 지금 삶의 돌층게에 쓰러져 흐느낀다. 허약한 자의식.
사는 일엔 상시의 용기와 또 믿음이 따라야 한다. 노상 그것이 미약하게 때문에 곧잘 내겐 버려진 아이처럼 막무가내의 호곡이 치민다. 어린아이처럼 나도 돌아 가신 어머니를 찾는다.
어머니! 이렇게 부르면 지체없이 격렬한 전류가 흐른다. 이 전기를 당신도 수없이 내 안에 일구어 준다.
사랑하는 친구여.
그대를 부르면 지체없이 전류가 온다.
서러운 전기, 사람의 외롬을 치명의 정도에까지 선동하는 전기, 그건 무참한 불이다.
나는 나의 핏줄에서 몇번이라도 당신을 되새김 한다 당신이 일구어 주는 그 불점이 속에서, 구운 칼날처럼 당신을 끄집어 낸다.
앞으로도 나는 내 지력의 근원지에서 당신과 더블어 있겠으며 당신 삶의 생태와 그 진실을 낱낱이 때놓지 않고 지켜보겠다. 행여 어느 날 당신을 버려주고 홀연히 떠나가게 된다면 그땐 오죽이나 죄스럽고 미진할 것인가.
눈이 닫길때 귀가 열리리라
보지 않고 들을때, 듣지 않고 느낄 때, 느끼지 않고 믿을 때, 비로소 시간마다 태초의 할배를 뵈올 수가 있겠더니 시간마다 당신을 맞을 수 있겠거니.
심회의 자재, 봉별의 자재를 나는 지극히 부러워 한다. 그러나 한편, 참으로 사랑 하는 사람들의 사이일수록 남김 없이 다 내어 주어선 안된다고 여겨진다. 서로 흡수 하고 서로 용해되어 마치도 한 사람의 내부와 같이 한계머저 없어지면 혹시나 위급한 좌절에라도 빠졌을 때 무슨 여력으로 그 어려움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
또 내부에서 생겨나는 봉괴도 있다. 권태나 타성 따위, 이럴때 전혀 건강한 저항이 없다면 어떻게 그 시련을 넘어설 수 있겠는가.
사랑의 모순은 사랑의 신비와도 통하는것 같다. 전후의 모든 과정에 금싸라기 같은 사람의 지혜가 알맞게 따르지 않는다면 정녕 사람은 값어치 없이 전락할밖에 없다.
사랑의 필연성, 그건 바로 사랑의 운명이다. 운명이란 말을 좋아 하진 않으나, 운명으로 오는 것이 사랑이다. 다른 말로 불가 항력의 안배, 그게 곧 사랑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정녕 멀리 왔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먼길을 거야 한다.
오늘 내 영혼을 당신에게 연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 하듯이 나는 청신한 바람으로 한 가슴을 채운다 당신의 길벗으로 속속들이 선택받기 위한 그 갈망으로 나는 내 자신을 이리 바치고 있다. 조용히 서두르지 않고 아주 간절하게 지금 나는 이렇게 있다.
비가 수직으로 서서 떨어 죽어 가고 있는 밤에 나는 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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