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여다본다, 깊은 그녀의 속
그곳은 이미 입구부터 어두웠고
내 눈의 검은 창엔 검은 빛으로 가득해진다
검은 문고리를 더듬더듬 만지며 핥으며
그녀 속으로 들어간다
검은 담이 있고 창이 있고 식탁이 있고 텃밭이 있고
언덕이 있고 강이 있고 바다가 있고,
온통 검은 것들이어서 처음엔
여기가 우주라는 걸 영 몰랐다
핥고 부벼대면서 그 익숙한 맛과 향기에 나는
한 생애를 기억해낸다
더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한때
그때, 검은 세계는 검은 것이 아니었다
바다가 요람이었고 늪이 놀이터였고
함께 숨쉬던 내 일부였다
온갖 비밀이 내것이었던 생애,
검고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생성의 비밀들
이제 검은 것을 보지 못한다
빛을 관찰할 능력 외 대부분의 시력을 잃었다
이후의 생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전혀 안 보이는,
내 존재의 생성이 끝나버린 세계에서
우두커니,
컴컴한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녀의 깊은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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