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이라 생각했다 색이 없다고 믿었다
빈 곳에서 온 곤줄박이 한 마리 창가에 와서 앉았다
할딱거리고 있다 비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허공이라 가끔 연약하구나
회색 깃털과 더불어 뒷목과 배는 갈색이다
검은 부리와 흰 뺨의 영혼이다 공중에서
묻혀온, 공중이 묻혀준 색깔이라 생각했다
깃털의 문양이 보호색이니까
그건 허공의 입김이라 생각했다
박새는 갈필을 따라 날아다니다가
내 창가에서 허공의 날숨을 내고 있다
허공의 색을 찾아보려면 새의 숫자를 셈하면 되겠다
허공은 아마도 추상파의 쥐수염 붓을 가졌을 것이다
일몰 무렵 평사낙안의 발묵이 번진다 짐작하자면
공중의 소리 일가(一家)들은 모든 새의 울음에
나누어 서식하고 있을 게다 공중이 텅 비어 보이는 것도
색 일가(一家)들이 모든 새의 깃털로 바빴기 때문이다
희고 바래긴 했지만 낮달도 선염법(渲染法)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공중이 비워지면서 허공을 실천중이라면,
허공에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람결 따라 허공 한 줌 움켜쥐자
내 손바닥을 칠갑하는 색깔들, 오늘 공중의 안감을 보고 만졌다
공중의 문명이라 곤줄박이의 개체수이다 새점을 배워야겠다
송재학/공중 (문학동네2009년 겨울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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