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낙서도 감정노동이다

그 이름에게

ivre 2011. 6. 11. 01:21

(어제 새벽에 부산에 가고 싶어 새벽3시에 집을 나섰고 고속도로를 달리던중 부산 다 가서 만난 낙동강의 안개가 낀 뚝길이 눈에 들어 왔다 고속도로에 차를 세우고 삼각대를 펴고 몇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던중 안개가 많이 끼어 시야가 흐른 상태에서 대형 트럭이 갓길가까이 까지 왔고 아주 빠릍 속도로 지나갔다. 아찔했다. 곧 이어 고속도로 순찰차가 왔고, 정신이 있는 사람이냐 없는 사람이냐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 하면서 나를 혼냈다. 더 찍고 싶었는데 하는 수 없이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던 새벽 이였다). 그래도 다행히 내 맘에 드는 저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황급히 찍은 사진 인데 잘 나와 줘서 고맙다 사진기야).

 

 

나는 누군가에 대해 강렬하고 쉼없이 호명의 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그 이름을 통해, 그 이름 속에서, 삶의 긍정을 분명히 하고 더하여 가능하면 상명한 질서와 품격 있는 조화를 누리고 싶어했다.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나게 될 일들에 대해 언제나 모른다. 다만 사람이 알고 있는 능력의 근원은 태초의 할배와 할미의 자애에 대한 의탁과 유순이다. 인간의 공통된 성향중의 이도 그 하나 일꺼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부를 긍극의 한 이름을 알고자 했다. 그 이름에게 말 하고 그 이름과 더불어 생각하며 그 이름안에 한 소박한 사상의 처소를 펴고자 했었다.

사색의 반려가 되고 정념의 어진 스승이 되어 줄 어느 연분 속의 정신.

이는 친숙한 사이에서나 혹은 전혀 미지의 영혼가운데서도 구할 수가 있을 것이다.

나는 실지로 한 이름을 불렀다. 단호하고 뇌명(雷鳴) 같이., 그러나 가장 가려지고 제일로 낮은 음성으로 나는 그를 불렀으며 지채없이 진심으로 그 이름 안에 잠겨 들었다.

있을 수 있는 중에, 아마도 가장 희귀한 위안과 희열을 낳아 주고 사람에게 배푸시는 태초의 할배와 할미의 연민의 그 깊히에 대해서까지 어쪄면 지(知)의 영광이 미칠만큼 오성의 전개를 가능하게 하는 듯이 여겨졌다.

단순과 담백의 영역에 불과한 곳에서 풍요와 채광에도 커다할게 연계의 팔을 뻗치고, 혼자의 흠성에도 여럿의 화음을 듣게 되었다.

닫혔던 것이 열리고 묶였던 것이 풀려나고 뭔가 부풀어 일어나는 새 숨결이, 고귀하고 만전인 것의 가호 아래 순탄하게 자라는것 같았다. 

또 사실 그랬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기의 소유 내지 상실의 실태이거나 그 균형 여부에 늘 아는 바가 미흡하기에,

나는 한 이름을 불렀다.

땀이 솟는 전념의 주술 같이 또는 돌 속에서 웅려한 문양을 파고 다듬는 분신없는 조도처럼, 이 일에서도 혼신의 염원에 발열하고 있었다.

피부에도 충열이 번지고 모발마져 을을이 잠을 깨는, 신선한 새 감각에 곤두섰다.

한 이름을 불렀다.

그건 급작스런 화염에도 비길 것인지. 은고에 의해 윤택하게 가꾸게 될 꿈이나 희구였을지.

그 이름 자채로써, 그 이름을 위해, 그 이름 안에, 일체의 것을 키우게 될 아아, 나는 한 이름을 불렀다.

이루 말 못할 감미와 연착.

자칫 감상에 휘말리지 않을까 염려 되는, 너무나 연유해진 내 감정의 이리 띠습고 달갑고 목이 메엉어는 이것,

소소하고 정결한 유열 .

신념이 도취 같은 충족.

소리를 누르며 치받는 통곡

아마도 그건, 지금껏 구하던 이가 그 욕구를 끝내고 기다리던 사람이 돌아서 가려 할 때 이를 그냥 버려두지 못하시는 신의 과다의 불시의 시사로써 열리는 문이였으리라.

그 이름을 불렀다.

한 마디의 주어를 찾기 위해 세상의 모든 말을 다 뒤지는 말의 나그네.

이 세상 온갖 말을 낱낱이 손아귀에 붙잡아 넣고 엄정히 살핀 다음, 자체로 또 풀어 주는 말의 감별사처럼.

말의 여로, 말 속의 오랜 방황을 기치며 마침내 한 이름을 찾게 된 바로 그 이름.

당신을 불렀다.

지금사 시직 하는 새 일이듯이 그래, 아주 지리하고 긴 과정의 예비 끝에 비로서 성취를 얻은 절대의 일거리 처럼 나는 이후

언제나 그 이름과 함께 있겠다.

아니, 어쪄면 그 이름을 찾기 위해 오늘 또 다시 분발하고 좌절의 돌벽을 지더듬 거리는 첫걸음을 내어딛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없이 나아갈 그 길머리, 실로 여러 고갯마루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천지도 아득하여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다만 어째도 확실한 건 내가 부를 궁극의 한 이름을 찾고 명백히 인식하게 될 일에 대해 나 자신 매우 간절하고 쉼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그 일이다.

내 옴 몸의 핏줄, 내 설핏한 눈매에도 이 마음의 글씨가 역역히 쒸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