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지만 오늘따라 늦은 기상을 하고 그리 넓지 않은 마당을 서성이고 있을 때 공중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나무비늘들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다가올 추위를 견뎌낼 나무들의 수피가 요 몆일 따뜻한 날씨로 인하여 수분으로 녹아져 생선 비늘 같은 몇 부스러기의 갈색 껍질을 떨구었습니다.
올려다 보니 싱그러운 오후 창공에 나무 기러기떼 떠 있듯이 나목 가지들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뭔가 가슴을 쳐 오는 장쾌의 느낌이 샘솟았습니다.
마지막 사람이여.
내 눈이 볼 수는 없었으나 천지간에 안개이듯 구름이듯한 수증기가 완연 합니다 모든 틈서리에까지 이른듯 하나 신춘의 입김이 흥건히 젖어들고 만상이 속속들이 축여지고 있다는 사실. 처음으로 눈 뜬 사람처럼 놀라움과 희열이 나의 핏줄 속을 감돌았습니다.
사람 한 평생에 몇번이나 개안의 감격이 있어지는지는 몰라도 이런 때 나는 묵무가내로 감격 합니다. 그리고 이를 나누기 위해 하나의 호명을 요구하게 되며 그가 바로 당신일 것입니다.
오지 못할 사람이여.
연인이 몇 사람이나 있게 되길래 끝 번호를 들고 나서게 되느내고, 필시 물으실 일을 예상해 봅니다.
이제 대답 하거니와 나의 연인은 그대뿐입니다. 왜냐 하면 연인이란 누구나가 마지막 사람인 탓 입니다. 사랑 하는 모든 이가 영원을 꿈꾸며 그 영혼을 둘이서 나누려 합니다.
따라서 그 사람 외엔 아무도 마지막 일 수가 없습니다.유일하게 최후의 사람인 그, 오직 이 서원이 가랑에 빠져 있는 모든 사람의 양심이요 도덕률인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로 하여 내게도 마지막 연인만이 존재 할 수 있으며 비록 지난날의 사랑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 절대성 안에 들어와 깊고 깊은 속 갈피에 젖어 들기 마련인 것입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당신이 나의 마지막 연인이시면 오늘 이 편지를 받아 주십시요. 아무리 먼 행선지라 해도 나의 편지는 필시 그 수취인을 찾아 갈 것입니다. 그날까지 나는 늙을 수도 또한 죽을 수도 없습니다.
나의 사랑이여
그대를 위해 나로서 가능한 가장 귀한 선물들을 마련하겠습니다.
이즈음 내 안에서 새롭게 솟아 나는 것들이 있음으로 해서 이 일이 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바로 마음 속의 얼음이 풀리는 새로운 시절이 내 안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열어 있는 마음들에 대하여 당신은 생각해 보셨는지요. 두꺼운 얼음장을 가슴 밑딸아 두었으므로 항상 냉기가 감돌던 절망적인 추위를 격어 보셨는지요.
비로서 그 얼음덩어리를 떼어내고 나의 여생 지금부터 새 삶갈이 살고자 합니다.
사랑을 원합니다.
많은 이를, 될 수 있다면 모든 이를 사랑하기 원합니다.
마지막 연인이 되어 주실 당신은 그 중심에 머무시기 바랍니다.
모든 아침 이 사연을 편지에 담아 보내면서 나의 말 말들이 봄 시냇물처럼 긴 가락으로 풀리고 심흐 순조롭게 이어져 갑니다.
오늘부터 날마다 편지를 쓸 지도 모릅니다. 차럐로 당신 손에 배달이 될 테지요. 나의 새로운 언어기가 이로써 플리게 된다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새로운 피부로 갈아 입는 신춘의 나무들을, 그리고 정결한 수증기로 채워져 있는 조춘의 아침을 닮고 싶습니다.
산울림처럼 회답을 주십시요.
그럼, 오늘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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