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낙서도 감정노동이다

세 번째 줄에서 덜어진 광대의 이야기4

ivre 2011. 8. 26. 00:47

서울 경기권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사진 찍기를 즐겨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 봤을 장소 두물머리이다. 가까이 사는 이들이야 다음에 또 오면 되겠지만 (실상은 이들고 에잇 하고 화를 냈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곳에서 천리밖 먼 곳에서 산다.나도 언젠가 어디서 보았음직한 두물머리 황포돗배를 한 번 찍어볼 생각으로 그곳을 찾았으나 왠걸, 있어야할 황포돗배는 한쪽 귀퉁이로 밀려나 있었고 그걸 본 난 망연자실 그자리에 철푸덕 주저 앉고 싶어졌었다. 그때 멀리 한 남자가 보였고 삼각대를 놓고 열심히 몆장을 찍었다. (덕분에 황포돗배보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두물머리를 관리 하는 이들에게 말 하고 싶다. 황포돗배를 늘 그자리에 놓아 줄 수는 없는건지, 그 황포돗배를 보기 위하여 혹은 찍기 위하여 오는 이들이 무척이나 많지 싶어 하는 말이다.


어제를 이어 다시 이어가 볼까 한다.

오히려 안식에 겉은 허허로이 벗고, 속으론 푸르디 푸른 나무의 넋과 무성한 생명의 거창한 의지를 거두어 억센 발등에 드리붓는 늠름한 자족을 부러워 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사람이 낙엽을 외롭게 보는 것은 저들 사람이 외로운 탓이요, 사람이 낙엽을 허망하게 보는 것은 저들 사람이 스스로 허망에 겹기 때문이다.
태초의 할배와 할매가 배프신 은총의 향연은 언제나 식탁처럼 많은 이를 부르고 있다. 하면 신록도 이 은총속에 있었고, 낙엽역시 신비한 은고의 태두리 그 속에 있다.

곧잘 여기서 이탈하고, 자주 이 곳으로부터 추방을 받는 일은 추녀 밑에 죽어 있는 새나 노변에 구르고 있는 낙엽임에 앞서 바로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인간, 그들이 아닐까보냐.
요즘 유행이거 난무 하는 시대에, 유행어 하나쯤 모르면 쫀빨 날려 버리는 인간이 되어 버리는.. 이런걸 유행어로 만들어 버리면 어떨까. [인간이란 이름의 낙엽] 오히려 이렇게쯤 불러 봄직하다.

거울속에  슬픈 얼굴이 비치는 것은 거울이 슬퍼 있는 까닭이 아니고, 참으로 거울을 드려다 보는 어느 얼굴, 그 자채가 슬퍼 있기 때문인 것과 같이 낙엽에서 허무를 살펴 보는 사람의 마음은 그 먼저 스스러운 허무의 자의식이 꽃의 파열처럼 나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낙엽은 인간 허무의 공감이요, 산울림 같은 먼 메아리인 것이다.

인간 허무의 자의식은 어디서 왔으며 인간은 왜 고독한가.
아니 엄밀히 따져서 인간은 확실히 고독한가 하는 것부터 생각해 보자. 인간은 분명 고독한 동물인가? 그렇다. 영락도 없이 인간은 고독한 영혼과 육체를 가졌다. 물 안개에 젖은 고도의 등대처럼 "나 혼자" 의 의식에서 늘 풀려나지 못하고 있음이 사람이다.
하면 인간에게 있어 과연 얼마나 고독이 유해했었나를 또한 생각해 볼 일이다.
내일 다시 써야 할것 같다. 글을 못쓰게 하는 방해 요소가 참 많구나..  휴... 아찔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