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를 수놓다가 사라져버렸다
씨앗들은 싹을 틔우지 않았고
꽃들은 오랜 목마름에도 시들지 않았다
파도는 일렁이나 넘쳐흐르지 않았고
구름은 더 가벼워지지도 무거워지지도 않았다
오래된 수틀 속에서
비단의 둘레를 댄 무명천이 압정에 박혀
팽팽한 그 시간 속으로
녹슨 바늘을 집어라 실을 꿰어라
서른세 개의 압정에 박혀 나는 아직 팽팽하다
나를 처음으로 뚫고 지나갔던 바늘 끝,
이 씨앗과 꽃잎과 물결의 구름은
그 통증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
헝겊의 이편과 저편, 건너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언어들로 나를 완성해다오
오래 전 나를 수놓다가 사라진 이여
'작가들의 글 > 내 영혼을 살찌워준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의 유혹/ 신현림 (배경음악 Oystein Sevag l Minorblue Edition 앨범) (0) | 2011.09.15 |
---|---|
한 여자에게서 꺼낸다/장석주 (배경음악 Musa Dieng Kala - Kalamune) (0) | 2011.09.12 |
선운사에서 / 최영미 (배경음악 - Terry Oldfield - The Africans) (0) | 2011.04.14 |
노인/황인숙 (0) | 2010.07.26 |
편도 1차선 / 이 진수 (들으시는 음악은 / Agricantus - Amatevi 입니다) (0) | 2009.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