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 / 천양희 / Sia - The Bully 형님은 자기 노선이 잇소? 독립문 지나다 아우가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자신에게 반문한다 희망은 있는 걸까 아직 그런게 남아 있다면 거기가 나의 노선이 될 텐데 아우는 자기 노선이 있나? 광하문 지나다 형이 묻는다 그는 대답 대신 형에게 반문 한다 희망은 있는 걸까요 아직 그런게 남아 있다면 거기가 너의 노선이 될텐데 가다 보면 길이 되는 것 그것이 희망이라면 그 희망이 우리의 노선이리 Sia - The Bully 작가들의 글/내 영혼을 살찌워준 詩 2024.12.24
노래 / 강정 / Alison Krauss & Union Station - Home On The Highways 숨을 뱉다 말고 오래 쉬다보면 몸 안의 푸른 공기가 보여요 가끔씩 죽음이 물컹하게 씹힐 때도 있어요 술 담배를 끊으려고 마세요 오염투성이 삶을 그대로 뱉으면 전깃줄과 대화할 수도 있어요 당신이 뜯어먹은 책들이 통째로 나무로 변해 한 호흡에 하늘까지 뻗어갈지도 몰라요 아, 사랑에 빠지셨다구요? 그렇다면 더더욱 살려고 하지 마세요 숨이 턱턱 막히고 괄약근이 딴딴해지는 건 당신의 사랑이 몸 안에서 늙은 기생충을 잡아먹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저 깃발처럼 바람 없이도 저 혼자 춤추는 무국적의 백기처럼, 그럼요 그저 쉬세요 즐거워 죽을 수 있도록 작가들의 글/내 영혼을 살찌워준 詩 2024.12.22
물푸레나무 / 박형권 / Aconcagua - Ojos Azules (중남미) 물푸레나무/ 박형권 저 나무, 물푸레나무안에 들어가 살림 차리면숟가락과 냄비를 들고 부름켜로 들어가방 한 칸 내고엽서만한 창문을 내고녹차 물을 끓이면지나가던 달빛이 창문에 흰 이마를 대고나물처럼 조물조물 버무린 살림을 엿보겠다나는 엎드려서 책을 읽고 있고겨울 들판에서 옮겨온 밤까치꽃 같은 여자가 뜨개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벽에 귀를 댄다물푸레나무에는 물이 많아서천장에서 똑똑 물이 떨어져그릇이란 그릇 죄다 받쳐놓으면실로폰 소리 나겠지겨울 내내 물 푸다가 봄이 오겠다여자하고 나하고 할 수 있는 일이란고작해야 서로 좋아하는 것나의 하초와 여자의 클리토리스가 파랗게 물이 들도록끙 끙 끙어떻게 어떻게 힘주다 보면나도 모르게 봄을 낳아서갓 낳은 알처럼 모락모락 김이 나는 세상이 찾아오겠다그때 창문을 열면? 작가들의 글/내 영혼을 살찌워준 詩 2024.12.21
바닥에서도 아름답게 / 곽재구/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가질 수 있지-김원중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날은 올 수 있을 까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그리워진 서로의 마음 위에 물먹은 풀꽃 한 송이 방싯 꽂아줄 수 있을까 칡꽃이 지는 섬진강 어디거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한강변 어디거나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모래알이 아름다워 뜨거워진 마음으로 이땅 위에 사랑의 입술을 찍을 날들은 햇살을 햇살이라고 말하며 희망을 희망이라고 속삭이며 마음의 정겨움도 무시로 나누며 다시 사랑의 언어로 서로의 가슴에 뜬 무지개 꽃무지를 볼 수 있을까 미쟁이 목수 배관공 약장수 간호원 선생님 회사원 박사 안내양 술꾼 의사 토끼 나팔꽃 지명수배자의 아내 창녀 포졸 대통령이 함께 뽀뽀를 하며 서로.. 작가들의 글/내 영혼을 살찌워준 詩 2024.12.20
손까락 사이에 낀 아침 / Musa Dieng Kala - Kalamune 들길 너머 양지뜸에 움막 하나 짓고 똘똘한 삽살개 한 놈 데불고 싶다 혹 모르는 손 찾아와도 너는 짖지 말아라 이젠 헛된 목청을 아껴두어야지 뜰 앞의 복사꽃 바람에 흩날리고 불현듯, 묵은 서러움이 목구멍을 간질거릴 땐 이웃집 할머니 텁텁한 농주라도 받아마시자 아아, 취한 세월은 이미 자취도 없어 봄은 또 저 혼자 열렬히 타오르다 사위겠지만 한평생 부치지 못한 편지는 모두 술잔 속에 불사르고 저 꽃 그늘 속 나비떼들의 싱싱한 꿈도 보이는 그런 봄날의 울 밑에 누워보고 싶다 가끔 바람에 꽃잎 하나 찾아와 네 소식을 물으면 그냥, 이렇게 나처럼 살고 있다 하고. 바다가 보이는 허름한 스레트집안에서 나는 이 봄을 그렇게 죽여가고 있다. 어딘가 박혀 있을 습작 중에서.. Musa Dieng Kala - Ka.. 작가들의 글/내 영혼을 살찌워준 詩 2024.12.19
멍/ 이정미 / Benito Lertxundi - Askatasunaren Semeei II 이제 대수롭지 않게 넘어기기도 하지만내 몸을 꽉 깨물고 있는 푸른 멍은내가 넘긴 한 장의 달력처럼 가볍거나무거운 시간을 지나온 것이다, 생각했는데뽀쪽한 모서리에 부딪혀마음을 다친 적이 수 없이 많았으므로다치지 않으려고 몸 밖의 모서리를몸 안으로 옮겨와 뽀쪽함을 삭여 내느라내 몸이 푸르게 피는 것이겠지다친 마음이 동글어지는 것이겠지,생각도 했었는데 나도 모르게내 몸에서 피고 지는 푸른 멍을 어루만지며너도 내 몸에다 나의 아픔을 가두기도 했겠다내 뾰족함이 너를 아프게 찔렀을 것이므로내 뾰족함이 삭고 있는 동안너도 아팟겠다, 생각해 보는 것이다서로를 너무 세게 껴안았으므로푸른 멍이 피어나는 것이다,생각해 보는 것이다. 작가들의 글/내 영혼을 살찌워준 詩 2024.12.18
동전을 뒤집으며 / 김세기 /Club 8 - What Shall We Do Next Club 8 - What Shall We Do Next주머니를 뒤지니 동전 나온다 백원을 뒤집으니 이순신장군 나오고 오십원을 뒤집으니 벼이삭 나온다 멀거니 줄 서서 동전을 뒤집으며 앞에 선 여자 궁둥이나 훔쳐보며 동전 밖에 없어 갈 곳은 없고 갈 곳 없어 아득하여라 조정에서는 이 좋은 날 무엇을 할까 신문에 난 연쇄살인사건과 어느 중소기업 사장의 자살소식을 보며 북녘의 동포들은 끼니를 거른다는데 동전밖에 없는 자신도 잊은 채 울먹이는 못난 나는 얼마나 작으냐 말 한마디 큰소리로 못하고 땡볕에 서서 다보탑을 뒤집으니 십원 나온다 주머니를 뒤집으니 먼지 나오고 먼지를 뒤집으면 뭐가 나올까 생각하며 무엇이든 뒤집기만 하면 다른 것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해서 일없이 동전만 뒤집는다 작가들의 글/내 영혼을 살찌워준 詩 2024.12.17
달 몸살 / 이대흠 / Oystein Sevag - The Door Is Open 달 몸살 현대시학 중에서제 몸의 중심에 벌래들을 기르는 귀목 나무 아래에서아프다는것이 축복임을 안다앓는다는것은 내 안에 누군가를 키우고 있다는 것아픈 몸은 홀몸이 아니라는것잎 돋은 귀목나무 바람과 노는 걸 보며 알았다.순과 꽃 우거진 봄 언덕은 판만대장경오래 동무한 병과 함께 누워묵언의 말씀을 그 향에 취한 채달몸살을 앓는다는 한 스승을 생각했다어느새 바닷물이 몸으로 들고나서바다와 함께 화를 내고 바다와 함께 쓸쓸해 진다는 그그는 나보다 오래 앓아서 우주와 한 호흡이 되었으리라내 안에 이는 바람에 툭 하고 잎이 돋는다누군가 나에게 병든다는것을 묻는다면앓으며 살아가며 한 호흡이 되는 것이라고죽을 만큼 아프면서 끝내 사랑 하는 것이라고누군가 나에게 사랑에 대해 묻는다면 "달 몸살이라함은 득량만 바닷가에 토굴.. 작가들의 글/내 영혼을 살찌워준 詩 2024.12.05
니느웨를 걷는 낙타-요나에게 이경임 / Sound Of Nature I The Sea- Terry Oldfield- Hear My Plea Sound Of Nature I The Sea- Terry Oldfield- Hear My Plea 슬픔으로 둥글게 솟아오른 내 등 위로 니느웨의 불빛들이 쏟아진다 나는 환멸의 옷깃들을 여미고 니느웨가 복제해내는 무수한 소음 속을 걸어간다 아무것도 꿈꿀 수 없는 생애란 시한부 환자의 연애처럼 불길한 것이다 멀리 내 유년의 꿈을 화장시킨 굴뚝들이 검은 연기들을 토해낸다 니느웨의 화장터는 언제나 활기차다 꿈의 사체들을 화장시키는 사람들과 꿈의 자궁에 방화하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오래 전, 이 곳에서 푸른 빗살 무늬의 잎새들을 나, 흔들던 시절이 있었지 한 그루의 사원처럼 온몸의 실뿌리들을 발기시켜 니느웨의 하늘로 나, 신앙을 바치던 시절이 있었지 그러나 이제 다시는 그 신성한.. 작가들의 글/내 영혼을 살찌워준 詩 2024.12.04
눙부 - 신경님 / Nikos Hatzopoulos - Secret Love (Ethnic Moments..중에서)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꽹가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철없이 킬킬대는구나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작가들의 글/내 영혼을 살찌워준 詩 2024.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