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그제 아들놈이 회식하고 남은 맥주 한 병을 가져 왔다. 하이트 1.6리터짜리. 적당히 취기가 온다. 마지막잔인듯 하다 이 잔이. 기특하구나 아들. 고맙다 니 덕에 이런 싯귀가 생각난다. 아침엔 나뭇가지엔 빈 잠자리 연한 자욱만 남고 피 한 방을 번진 듯한 다갈빛 잎새들은 차건 땅 위에 눈을 감았구나 이러한 시 한 귀절을 입속말로 외워본다. 그런데, 빌어먹을 시 제목도 시인의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낙옆은 철새인 양 오는 엄숙한 애상, 매양 엇비슷한 눈매의 사변을 일깨우며 우리의 가슴으로 날아 들기도 한다. 마치 잠을 청하며 오는 나비들과도 같이, 만산 낙엽이요 골짜기마다 덩그러니 낙엽의 더미다. 도시의 가로수도 저마다 조락을 견디며 서 있고, 아파트 정원의 수목 또한 며칠 새 껑충하니 여윈 목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