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먼지들과 신발들과 책들,
참새와 아이들과 금붕어들, 그리고
웅덩이 같은 것들과 함께 늙어간다.
때로 잡동사니 추억들이 벌이는 연극에
초대받는, 그런 특별한 저녁이 오면,
한없이 낡고 우울한 내 머리 속 화원에서
너는 며칠 후면 시들어버릴
검은 장미송이들을 고른다.
흘러가 버린 시간들 속에 각인된 악몽 때문에,
그럴 때면 너는,
가까스로 몸을 한껏 웅크리고
시간이 네 몸 속에 파놓은 구덩이들을
들여다본다, 마치 몸만 사람으로 환생한 지렁이가
전생의 기억들 속에서 어둠을 파고들 듯이,
너는 구덩이들 속으로 빨려들 듯하다.
다시는 환한 지상으로
고개를 내밀지 않겠다는 듯, 너는
아늑한 구덩이들 속으로 뛰어내릴 듯하다.
산비탈 음지에 돋아난 화려한 독버섯들처럼
너를 유혹하는 구덩이들,
그 텅 빈 구멍들 속으로 씨앗을 뿌리듯
너는 내 몸 속을 떠돌아 다니는
속삭임들을 흩뿌린다.
오 네 삶의 함정인 구덩이들.
네 마음은 움푹 패인 하루의 묘지들 속을
고독한 독사처럼 기어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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