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한때 아빠는 도망다니고
엄마는 아빠를 찾아
전국을 헤매고
나는
고향을 좋아하고
마당의
작은 꽃을 좋아하던
나는
끌려다니며
끝없는 멀미에 시달리고
그래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고향으로
돌아가
거기
그냥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랬지
그러나 나의 여로는
끝이 없었지
할머니가 한때
넌
나랑 함께 살자
해도
난
그럴 수는 없었고
끝없이 끝없이
터지는 데모에
끊임없이 끊임없이
누르는 테러에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가는 경찰서에서
아빠는 맞아
들려 나오고
엄마는
되레
외가로 달아나버리고
나 혼자
빈 마당에서
새를 그렸다
새
그림
바람과 눈물
나는 그림 없이는
살 수 없었다
그 그림을 못 그리게
그림 그리면 배고프다고
못 그리게
내 손을
이어서 숯을 끼고 그리는
내 발가락까지 노끈으로 묶어놔
버렸다
버리고 나서 사십 년
이제껏 포기했었다
지난해
엄마 돌아가신 뒤
어느날 밤
잠은 오지 않고
밤새도록 내 마음은
울부짖었다
그림을
그리자
그림을 그림을 그림을
그리자
꽃을 새를 바람을
눈물을
그리자
그리자
아
나는 살아나기 시작했으니
아
그 사십 년을 나는
죽어 있었으니
이젠
누가 와
당신 체포합니다
소리 해도
조금도 겁나지 않는다
그림만
곁에 있다면
나는
불사다
내 아이들 둘 다 그림 그리고
내 아내도
그림 그리고
우리는 다아 그린다
난
이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아마도 내 마지막 꿈은
늙어서
꼬부라져 늙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가장 거룩한
춘화도
한 잎
그리다 가는 것
이 세상에서
가장 가장 더러운 씹그림을
이 세상에서
가장 가장 숭고하고 심오하게
그리다 그리다가
숨져 가는 것
가며
빙긋
미소짓는 것
아홉 살 때
새 그림 회벽에
발가락 사이 숯을 끼고
엄마 몰래 그리고 나서
혼자 웃던 그 미소를
손은
느을
노끈에 묶여 있었으니까
바람은 내 머리 위 불고
눈물은 내 뺨을
흐르고
하늘은
저 머얼리서
푸르고
푸르고
새푸르르고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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