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030

도화 아래 잠들다 / 김선우 /Prem Joshua - Darbari NYC -Maneesh de Moor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 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 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

강미정 참 긴 말 / Irfan- Invocatio II

일손을 놓고 해지는 것을 보다가 저녁 어스름과 친한 말이 무엇이라 생각했다 저녁 어스름, 이건 참 긴 말이리 엄마 언제 와? 묻는 말처럼 공복의 배고픔이 느껴지는 말이리 마른 입술이 움푹 꺼져있는 숟가락을 핥아내는 소리 같이 죽을 때까지 절망도 모르는 말이리 이불 속 천길 뜨거운 낭떠러지로 까무러지며 듣는 의자를 받치고 서서 일곱 살 붉은 손이 숟가락으로 자그락자그락 움푹한 냄비 속을 젓고 있는 아득한 말이리 잘 있냐? 병 앓고 일어난 어머니가 느린 어조로 안부를 물어오는 깊고 고요한 꽃그늘 같은 말이리 해는 지고 어둑어둑한 밤이 와서 저녁 어스름을 다 꺼뜨리며 데리고 가는 저 멀리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집 괜찮아요, 괜찮아요 화르르 핀 꽃처럼 소리없이 우는 울음을 가진 말이리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조영래 - 인간선언 / 노래-일어나라 열사여

정태춘 - 일어나라 열사여사랑하는 친구여, 받아 읽어주게.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 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태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 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

김상미 / 함정속의 함정 /Mazzy star - Fade into you

Mazzy star - Fade into you 날씨가 많으 풀린 탓인지 그나마 조금 팔리던 호빵찜기 속의 호빵들은 자신을 댑펴주는 온기로 인하여 볼있품없게 불어 터져 엉엉 울고만있다.밤, 익숙하다 못해 지겹기조차 한 밤.남들은 이 밤에 시인이 되기도 하고 달콤한 사랑도 하고 온갖 공상을 하며 천당에도 가보고 한다는데난 처절하게 웃음을 팔고 있다. 처절하다는 말은 좀 지나치다 싶긴 하지만잠을 자고 있겠구나 코를 골며 혹은 이빨을 갈며 혹은 잠꼬대를 할며. 혹은 달콤한 사랑의 꿈을 꾸며 4시구나 잼이 없는 영화를 한 편 본 덕분에 눈이 아프고 정신이 혼미 해 졌거든.그걸 꾸역 꾸역 본 나도 인내 하나는 대단하다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 아침 나는 그녀의 이쁜 미소를 보기 위해차의 시동을 켤..

헐거워짐에 대하여 / 박상천/David Broza - In Snow

David Broza - In Snow   맞는다는 것은 단순한 폭과 길이가 같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오늘 아침, 내 발 사이즈에 맞는 250밀리 새 구두를 신었는데 하루종일 발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어요, 맞지 않아요. 맞는다는 것은 사이즈가 같음을 말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어제까지 신었던 신발은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어요, 맞는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 헐거워지는 것인지 모릅니다. 서로 조금 헐거워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편안해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는 게지요. 이제, 나도 헐거워지고 싶어요 헌 신발처럼 낡음의 평화를 갖고 싶어요. 발을 구부리면 함게 구부러지는 헐거운 신발이 되고 싶어요.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 함민복 / Bob Seger -Turn The Page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우산은 말라가는 가슴 접고 얼마나 비를 기다렸을까 비는 또 오는 게 아니라 비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위해 내린다는 생각을 위하여 혼자 마신 술에 넘쳐 거리로 토해지면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정작 술 취하고 싶은 건 내가 아닌 나의 나날인데 비가 와 선명해진 원고지칸 같은 보도블록 위를 타인에 떠밀린 탓보단 스스로의 잘못된 보행으로 비틀비틀 내 잘못 써온 날들이 우산처럼 비가 오면 가슴 확 펼쳐 사랑 한 번 못해본 쓴 기억을 끌며 나는 얼마나 더 가슴을 말려야 우산이 될 수 있나 어쩌면 틀렸는지도 모르는 질문에 소낙비에 가슴을 적신다 우산처럼 가슴 한 번 확 펼쳐보지 못한 날들이 우산처럼 가슴을 확 펼쳐보는 사랑을 꿈꾸며 비 내리는 날 낮술에 취해 젖어오는 생각의 발목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