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몽상가의 잠꼬대 1014

못 하나를 나는 이 지점에 꽂아 두게 되었나 보다

아주 오랜만이지 싶다 집옆 숲길을 걷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내 그림자. 내 그림자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 사람은 묵은 뜻과 빛 바랜 과거를 가졌으되 그 한 편 나날이 새로우며 시간마다 탄생할 수도 있는 그런성질을 아울러 가지고 있진 않을까 .... 처참히 상처 입었던 그가 불덤불에서 꺼낸 칼날 같은 외치게 해 주소서 불로 구워서 두드려서 날을 세운 청결 하고 강한 칼이 되게 해 주시옵고 그러나 그것을 쓸 적에 지극한 애련을 온 몸으로 깨닫게 해주소서 애련은 우리만큼의 나이에서 비로소 곱씹게 되는 참 뼈저린 삶의 미각이로구나. 따습고 성실한 애련에 눈을 떠서 삼라의 모든 것을 새로이 살펴내게 해 주소서 생명 있는 것이 다다르는 마지막 처소를 묵상하며 마지막 모습들을 낱낱이 공손하게 ..

잊혀져 가는 것들.

저 물건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그 옛날 어려운 시절에 공장에서 찍어낸 연탄. 그 연탄이 파손되거나 물에 젖어 파손되어 못쓰게 되어 한쪽에 모아두었다가 연탄찍는 아저씨가 오면 그것을 대아에 퍼서 가지고 나가면 그 아저씨는 탄 연탄과 부서진 연탄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다시 쓸 수 있는 새 연탄(19공탄)으로 만들어 주던 요술 상자 같은 기구 였습니다. 저도 이 기구를 보고 많이 반가웠는데 여러분들 소감은 어떠십니까. 물론 이 물건을 전혀 보지 못한 분도 많이 있겠군요.

노인/황인숙

나는 감정의 서민 웬만한 감정은 내게 사치다 연애는 가장 호사스런 사치 처량함과 외로움, 두려움과 적개심은 싸구려이니 실컷 취할 수 있다 나는 행위의 서민 뛰는 것, 춤추는 것, 쌈박질도 않는다 섹스도 않는다 욕설과 입맞춤도 입 안에서 우물거릴 뿐 나는 잠의 서민 나는 모든 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 화장수 병 뚜껑 닫는 소리 슬리퍼 끄는 소리 잠에 겨운 소근거림 소리가 그친 뒤 보청기 빼면 까치가 깍깍 우짖는다 나는 기억의 서민 나는 욕망의 서민 나는 生의 서민 나는 이미 흔적일 뿐 내가 나의 흔적인데 나는 흔적의 서민 흔적 없이 살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