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몽상가의 잠꼬대 1002

거실에서 바라본 비

이리 삭막함을 용소 합씨다. 비정함과 폐쇠, 서로 타인임을 용서 합씨다. 가족간에도 끼어드는 추위를 용서 합씨다. 사랑했는지 안 했는지 애매한 부부사이를 용서 합씨다. 관계의 빈곤들을, 진흑에 내굴린 금싸라기의 시간도 부디 용서 하십시다. 불면을 용서 하시고, 좋은 잠은 성성의 참여라고 했는데 밤마다 잠은 메마르고 두통과 이명이 잦은 이 지랄 같은 나의 밤을 용서 받고 싶습니다. 화해를 허락 하시고 위안과 협동과 다시금의 분발을 허락 하시고 이른바 행복이란 놈을 이제 내게도 허락해 주십시요. 충실과 나가가게 이 다리를 잡아 끌어 주시고 삶을 지랄 같이 막 써 버려 이제 죽을 날이 가까워진 내 나이를 용서해 주시고 남아 있는 삶에 꽃피우게 해 주시고 뜨겁지도 차지도 않는 가장 좋은 따스함을 이 동굴 속에 ..

월곡리 폐가가 들려 주는 이야기

들어가는 길 잎구에 창고의 창 (가축을 키우거나 곡식과 기타 농기구들을 보관해뒀던 장소이지 싶다 아쉽게도 안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으로 들어 가는 문이다. 얼마나 오래 방치가 되어 있었으면 길은 없어지고 잡풀과 키가 큰 나무까지 있는걸 보면 얼마나 오랜 세월 그대로 방치 되었는가를 알 수 있을것 같다. (집 안으로 들어 가다 발판을 밟았는데 빠져서 카메라를 긁혔고 밑을 내려다 보니 제법 깊었는데 아마도 변소 자리가 아니였나 생각이 든다) 인간도 그렇지만 세월을 거부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나 보다. 이 사진으로 말 하고 싶은건 세상의 모든건 보듬고,사랑하고, 아껴줘야만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는거다. 언젠간 쓸꺼라 생각하며 곱게 한쪽 귀퉁이에 걸어둔 표주박 하나에서 내가 느낀건 그럼에도 불구 하고 여전..

세번째 줄에서 떨어진 광대의 노래5

나는 누구란 말인가. 진시로 내 삶에서 나는 누구란 말인가. 나는 당신의 누구인가? 겨우내 내 시력이 건강했었나를 돌이켜 생각한다. 잃은 사람이나 새로 얻은 사람이 있었는가? 닫혀진 문 앞에서 나직이 내가 노크 했었나? 그랬는데 열리지 않았었나? 내 감정은 매우 가라 앉았다. 자구 밑바닥으로 처져 내려 생사의 결단 보다도 더 가파롭게 쳐져 내려 정녕 바닥에까지 침잠한 것이다. 한 덩이의 석탄이다. 하나 속속들이 기름이 부글 거리고, 불을 댕겨 붙이면 삽시에 펄럭이는 화염이 또 된다. 왜 괴로와야 하나? 무엇을? 그 흔하고 오랜 습성, 명제도 불투명한 번민은 자못 이성의 오욕이라 하겠는걸. 하면 그동안 무엇을 번민했었나를 말해보라. 말해보라. 그리고 또한 사랑 했었나? 아슴한 옛날, 이름도 저승인 그 전세..

원소리

사람들은 뭘 하고 있나?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서 모든 이가 목소리를 합쳐 소리 지른다. 바르고 자유롭게 살자고 한다. 윤택하고 따습게 살자고들 한다. 그야 인권의 발언이지. 겨우내 자기 땅의 역사를 묵상 하던 지금 신선한 늦봄 천지를 맞았다.봄의 상명한 기운이 꽃의 담향과 섞여 솜실 같이 풀어진다. 우유라거나 또는 비누거품, 공기가 부드러워 못 견디겠다. 그렇구나. 쓸쓸한 자연 곁에 내가 엎뎌 있었다. 아무리 퍼내도 삽시에 또 괴는 샘물, 무량한 상념을 소의 위장처럼 느리게 반추 하고 있었지. 자연은 언제나 놀라움의 장이다. 괭장히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는 놀래 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놀라움에 적쟎이 굶주려 왔구나.